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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시리 Jun 04. 2022

왼쪽, 오른쪽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였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종종 학교를 마치면 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아버지의 퇴근길에 함께 귀가하고는 했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 적당히 비밀스러우면서도 어른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실상은 사무실 한쪽에서 마음 편히 보고 싶은 텔레비전 만화를 보면서 노는 것이었고, 아주 가끔은 학교 숙제나 공부 같은 것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평소와 같은 주중의 어느 오후였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4호선 사당역이었던 것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지, 어디를 가는 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려면 마그네틱 승차권을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내 승차권을 사려고 매표소의 긴 줄을 기다리기에는 바쁘셨었는지 내 몫의 승차 요금도 아버지의 정액권으로 개표구를 지나자고 하셨다. 당시에는 지하철 정액권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승차권을 사는 것이 아니고 미리 지불한 금액만큼 정액권 하나로 계속해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정액권으로 개표구를 통과하시고는 건너편에서 나에게 다시 같은 표를 건네셨다. 그래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비용은 내 몫의 것까지 다시 지불이 될 테니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주 잠시 누가 뭐라 하지도 않은 지하철 요금 체계에 대해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개표구 앞에서 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승차권을 내 오른쪽 개표구 투입구에 넣어야 할지, 왼쪽 개표구 투입구에 넣어야 할지 하는 것이었다. 지하철을 처음 타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라면 어머니께서 대신 내 표를 넣어주시거나 하는 것이었고 처음부터 내가 직접 표를 넣는 것은 익숙한 경험이 아니었다.


  내가 자유롭게 사용하는 손은 왼손이었다. 어려서부터 오른손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이 보실 때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아무도 없을 때면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이런저런 물리치료와 민간치료를 무수히 받느라 내 아픈 손이 오른쪽이라는 건 잊을 수 없었다. 매일 밤 부모님은 잠자리에서 내 오른팔만 찜질해주시고 주물러 주셨다. 내게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은 그렇게 너무나 명확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 관습의 좌우와 나의 좌우가 사뭇 다름을 그때는 아직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왼쪽 투입구에 승차권을 넣으려다 말고 들었던 생각은 보통의 사람들이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니까 오른쪽 투입구에 넣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치를 때도 처음 고른 답이 정답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그냥 그렇게 오른쪽 투입구에 승차권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못했다. 다시 보니 내가 통과할 개표구의 가로막대가 왼쪽 투입구가 있는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전혀 그럴 것이 아니었지만, 마지막에는 아마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마다 승차권을 넣는 방향이 달랐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몇 걸음 멀리 가고 계셨다. 무심하셨다기보다는 이 상황 자체가 구태여 내가 개표구를 무사히 잘 통과할지를 지켜보고 기다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조금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서둘러 왼쪽에 있는 투입구에 승차권을 넣고 가로놓인 막대를 몸으로 밀었다. 막대가 돌아가지 않았다. 몸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한번 해보고 아니었으면 얼른 다시 오른쪽 투입구에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민첩함보다는 당황스러움에 허둥대면서 기계가 빠르게 토해내는 승차권을 나도 빠르게 한 번 더, 그리고 두 번인가 세 번을 다시 같은 투입구에 넣었다. 그때의 내 표정은 꽤 울상이었을 것 같다.


  어느새 아버지가 돌아와 내 앞에 계셨다. '오른쪽으로 넣어야지.' 하고 알려주셨다. 다시 승차권을 밀어 넣자 개표구의 막대는 아주 부드럽게 돌아가 내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어주었다. 그 느낌이 상냥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버지는 별말씀을 더 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는데, 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다만 내가 부끄러웠다. 혹시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모자라 보였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다시 직장인이 되고 하면서 지하철을 매일같이 이용했다. 더는 마그네틱 선이 그어진 승차권이 아니고, 교통카드를 이용했다. 더는 왼쪽과 오른쪽을 고민하지 않고, 항상 신경 써서 개표구 오른쪽에 있는 장치를 이용했다.


  이제는 차를 운전해서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이용한 게 언제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오래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고. 어린 나는 그날 내 부끄러움만을 생각했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날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저 불필요하게 지출된 정액권의 금액이 아까우셨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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