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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Sep 06. 2019

[책 리뷰]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나의 오랜 친구와 같은 책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 베티 스미스 저/김옥수 역 | 아름드리미디어 | 원제 : A Tree Grows in Brooklyn


어린 시절 책장에 있었던 책이다. 뭐든 읽는 걸 좋아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다. 물론 개중에는 어린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책도 많았지만 심심했던 나는 그런 책들도 다 읽었다. 그저 활자를 읽는다는 게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다 읽다가 발견한 선물 같은 책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책은 그 정점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내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때 한 번씩 읽었다. 내용이 잊혀질 즈음이기도 했고 이때쯤에 다시 읽어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부러 읽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긴 공백을 지나 개정판으로 새로 구입해 읽었는데, 여전히 정말 좋았고.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게 보여서 더 좋은 책이라는 게 느껴졌다. 책에 영향을 받아서 이런 내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과 나의 비슷한 점도 눈에 띄었고.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이었을 거다. 아직 어린 나에게는 전체 서사와 묘사가 전부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커피를 버리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프랜시네 집은 정말 가난하다. 아이들조차도 쓰레기를 주워서 팔고 그걸 저금통에 모으고 때로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만큼. 그래도 가족끼리 모여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가진다. 프랜시와 닐리는 아직 어려서 커피의 맛을 모르지만 그들 몫의 커피도 있다. 그렇게 커피의 향을 느끼다 보면 커피가 싸늘하게 식고, 향기만을 느끼던 프랜시의 커피도 버려야 한다. 그럼 그걸 수채 구멍에 버린다. 그걸 보며 누군가는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이게 무슨 낭비냐고, 다른 것보다도 애들 커피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프랜시의 가족들은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아무리 가난해도 뭔가를 버릴 정도의 사치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지 커피의 향기만을 누리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고. 


이 작은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랜시네 가족들은 가난해도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고 늘 노력한다. 일을 가기 전에 언제나 면도하고, 깨끗한 속옷을 입고, 깔끔하게 다린 셔츠를 입는 아빠. 아이들에게 언제나 성경과 셰익스피어만은 읽어주는 엄마. 그렇게 읽는 것과 독서의 즐거움을 알고 도서관에 가서, 도서관에 있는 책이 아직은 세상의 모든 책이라 여겨질 때니 abc순으로 모든 책을 읽겠노라 다짐하고 실천하는(물론 불가능한 계획이지만) 프랜시.


시대 배경이 아주 오래전이라 당연스럽게 가난 차별, 미혼모 차별, 노인 혐오, 여성 혐오의 일화도 나온다. 프랜시의 집이 해당되는 건 가난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이유로, 촌지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프랜시에게는 그런 속물적인 선생을 그에 적절한 방법으로 혼내주는 이모가 있다. 

그 외 미혼모나 노인, 혹은 몸 파는 여자 등을 보며 사람들이 하는 말, 또는 어린 프랜시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차별적 말이나 사고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그런 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부모님이 프랜시에게는 있다. 


프랜시는 동생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어느 날 조금 먼 동네 산책 중 너무나 가고 싶은 학교를 발견하고, 너무나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주소지를 허위로 옮기면서까지 그 학교로 전학을 간다. 나는 여기서도 프랜시 부모님의 조금 다른, 그러나 공통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프랜시의 아빠는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너의 선택이라면, 지지하겠다며 그 과정을 도와준다. 프랜시의 엄마는 학교가 다 거기서 거긴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만약 학교에서 집에 연락 올 일이 생기거나 해서 집주소가 허위인 게 드러날 경우, 모든 책임은 프랜시 너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먼 길을 너 혼자 걸어가야 하더라도 그 또한 네 선택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프랜시는 기쁘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 길은 멀었지만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프랜시가 마냥 착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가난한 처지에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싶어서, 거짓말을 해서 음식을 더 받거나 선물을 받거나 하는 일이 있다. 프랜시는 양심의 가책에 바로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선생님은 크게 혼내는 대신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과, 그 거짓말의 과정에서 프랜시가 했던 말들을 보면 너는 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으니, 대신 그걸 말로 하지 말고 공책에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한다. 


훗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프랜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고, 남동생인 닐리는 자기는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돈을 벌겠다고 한다. 대학은 한 번에 한 명밖에 보낼 수 없다. 프랜시의 엄마는 닐리에게 대학을 가라고 한다. 프랜시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프랜시에게도, 닐리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충격적인 부분이었는데 곧 이어지는 말에 납득했다. 

프랜시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더라도 너는 언젠가는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할 거라고. 하지만 닐리는 지금이 아니면 절대 공부를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그렇다. 남자라서, 여자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식 둘이 모두 공부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던 입장에서 나올법한 현명한 말이었다.


책 전체가 아름다운 이야기들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이건 동화가 아니기에. 아버지의 병환, 프랜시가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정말 가슴 절절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 배신당하기까지 한다... 그런 게 인생이겠지. 그러나 바르고 성실하게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선택하며 노력하는 프랜시와 가족들이기에 더 아름답게 그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외국 표지가 더 멋져서 한 장 첨부. 최초 발행은 1943년에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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