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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Oct 03. 2019

[드라마 리뷰]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윤석현은 성장했고 주열매는 성장하지 못했다.

로맨스가 필요해, 여기저기서 종종 듣던 드라마였고 알고 보니 1, 2, 3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유미를 좋아하니까 정유미가 나온 시즌2, 로맨스가 필요해 2012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은, 드라마를 보기 전에 사람들이 수많은 악평을 쏟아냈던 캐릭터 윤석현(이진욱 역)이 나랑 정말 비슷하다는 거였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성격이나 말투나 그 배경 등등까지 합치면 90%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한 적이 있는 말과 윤석현이 하는 말이 같았고 내가 들은 적 있는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대사를 윤석현이 듣기도 한다. 윤석현에 대해서 내가 할 말은 그게 다다. 나랑 비슷하다는 것. 


나랑 가장 다른 건 내 주변엔 주열매 같은 인물은 없다는 부분인 듯. 있었어도 둘 중 하나가 지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주열매는 윤석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무례했고 윤석현도 주열매를 무시하는 게 정말 크기 때문에, 그 관계는 말마따나 ‘사랑’이 없었다면 애 진작에 끝나고도 남았을 관계다.


왓챠에 있는 이 드라마 평 중에 ‘주열매 성장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윤석현 성장 드라마’라는 게 있었는데, 윤석현만 성장했고 주열매는 단 한순간도 조금도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내가 윤석현에 이입해서가 아니라, 주열매라는 인간 자체가 절대 괜찮은 인간이 아니다. 그 별로인 캐릭터를 정유미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정유미까지 싫어질 뻔했다... 

윤석현이 아니라 우지희, 선재경과 같은 친구에 이입해도, 신지훈에 이입해도 그들이 다 대단해 보인다. 주열매 같은 인간을 오랜 친구라는 이유로, (본인이 생각하기에) 운명의 상대라는 이유로, 옆에 두고 아끼고 관계를 지속하고, 사랑해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니. 


주열매는 모든 순간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기감정만 중요하고. 후반부에 윤석현이 그 부분에 대해 분노하며 터뜨리는 게 있는데,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는 게 더 놀라울 정도다. (심지어 윤석현이 분노한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자기감정밖에 생각하질 못하니 모든 결정이 쉽고, 응답 없는 윤석현이 답답하고 속 터지겠지.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싫으면 나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 기분에 미칠 영향이나 이후에 그것이 발단이 되어 마치 나비효과처럼 어떤 일까지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면 모든 게 그렇게 쉽고 간단할 수가 없는데. 차라리 강단 있고 멋진 사람 이기라도 하면 몰라. 자기가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최선인지 모를 때는, 성인이라면 모르더라도 두렵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주열매는 선택이 두려워 말로 자기 입장만을 쏟아내고 선택은 상대방에게 미룬다. 이에 대해서도 윤석현이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오히려 주열매의 사연이 더 궁금해졌다. 윤석현도 무슨 사연이 있으니 저런 성격이 된 걸 텐데(그리고 그것은 가족사와 연관된 것이리라는 복선도 여러 번 나오는데) 그럼 주열매는 뭐 때문에 저런 성격이 된 것일까... 감정 조절 수준은 거의 초등학생 이하이다. 내가 화나면 화를 내야 하고, 내가 보고 싶으면 봐야 하고, 이에 토 다는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다, 수준의 논리. 나는 이에 대한 어떤 사연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나왔어야 납득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신지훈과의 연애를 시작하고, 신지훈이 주열매의 손에 있는 상처에 대해 묻는다. 그건 윤석현과 연관된 상처이고 동시에 주열매 마음의 상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지훈은 그걸 모른다 (알았으면 묻지 않았을 사람이기도 하다). 주열매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말한다. 자꾸 그렇게 꼬치꼬치 물을 거면 헤어지자고. (자기는 그렇게 윤석현을 괴롭히는 수준으로 질문을 해대면서?;;)

무엇보다 헤어지자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것도 어이가 없고. 그렇게 너무 쉽게 자리를 뜬다. 다짜고짜 화난다고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고 집에 가버린 주열매. 신지훈도 당연히 화가 났고 연락하지 않는데, 이후에 주열매는 “신지훈 왜 연락 안 하냐”라고 혼자 툴툴거리기까지 한다. (어이상실)


주열매가 얼마나 다른 사람 마음 생각을 안 하는지는 신지훈, 윤석현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때 절정으로 나온다. 주열매가 신지훈의 집에 들어가 지내기 시작하는 동안 윤석현의 여동생이 죽었고, 주열매는 그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할머니를 통해 듣게 된다. 그 순간에도 주열매는 동생을 잃은 윤석현을, 동생의 아픔을 지금껏 말하지 않아 온 윤석현을, 그것도 모르고 그 앞에서 무례한 말을 해서 윤석현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 할머니조차도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한다. 

암튼 그 사건을 계기로 주열매는 신지훈에게 이별을 고하고, 신지훈은 당황하면서도 윤석현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 걱정스레 묻는다.

“그 사람은 괜찮아?” 

주열매는 답한다

“나는 괜찮아.”

... 


비슷한 대화를 윤석현과도 한다. 자기 마음 잘 모르겠다고 애매하게 굴며 선택은 상대방에게 넘겨버리는 주열매에게 윤석현이 화를 내며 말한다.

너 설마 신지훈 앞에서도 이런 소리 했냐고. 

윤석현과 신지훈은 사랑의 라이벌인데도 극단의 나쁜 상황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생각하고 헤아린다. 연적인데도 그런다. 그런데 주열매는 사랑한다면서도 상대방 마음에 관심이 없다. 


주열매는 신지훈이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는데도 그 하루를 못 참고 신지훈이 잠든 (것 같은) 틈을 타서 몰래 나가버린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참을성도 없고 예의도 없고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지. 

주열매는 집에 돌아와서 신지훈에게 받은 것들을 정리한다. 받은 꽃을 말린 것, 둘에게 추억이 있는 LP판, 그리고 신지훈에게 소중한 사연이 있는 신지훈의 어릴 적 사진. 

여기서 내 짐작: 꽃은 버리고, LP와 사진은 신지훈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LP판들은 신지훈이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했고 그 사진은 신지훈에게 ‘사랑’이 뭔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니까. 그리고 그것들을 돌려줌으로써 관계를 종결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 그리고 주열매는 그냥 그것들을 모두 한 데 넣어서 버린다. 

오죽하면 나중에 분리수거장에서 그것들을 발견한 윤석현이 LP판과 사진은 다시 가져와 주열매의 방에 갖다 놓는다. 주열매는 신지훈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 그것들을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더라도, 신지훈에게 그것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쓰레기봉투에 대충 넣어서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윤석현이 변했다. 그래서 주열매를 견디기로 했다. 정도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주열매는 이기적이다.

관계가 회복되고 사이좋게 지내기 시작하는데, 윤석현이 마감 하루 전이라 매우 바쁘다고 해도 한 시간만 자기랑 놀자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마감이 하루 남았을 때는 문까지 걸어 잠그고 자기 일을 한다. 윤석현이 전화로 뭐라고 해도 사랑한다는 말로 넘어간다. 

그 사랑한다는 말에 윤석현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표현한다. 그렇게 윤석현이 변했고 표현을 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주열매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극 중 신지훈도 윤석현도 주열매의 친구들도 아니다. 주열매에게 내가 사랑을 느끼는 것도 우정을 느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무례함과 이기심이 더욱 똑똑히 보였다. 

결국 사랑이거나, 사랑에 가까운 우정이 아니라면 견딜 수 없는 존재가 주열매라는 캐릭터였고. 그걸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윤석현은 주열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주열매도 결말 다 와서 깨닫기는 한다). 그럼에도 말 하나 안 해준다고 징징거리고. 둘이 본 세월이 몇 년인데 그때까지도 그걸 모르는지, 얼마나 상대를 생각 안 하고 자기 마음밖에 안 보이면 그럴 수 있는지. 암튼 그렇게 이기적이고 속 터지고 열 받는 캐릭터를 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글 초반에 썼듯, 주열매를 향한 윤석현의 무시, 깔아 내리기. 윤석현을 향한 주열매의 무례와 그 이기심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리얼했고, 그 외의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인터넷 소설 느낌이 날 만큼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이었기에 적절히 조화되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_ 2019. 8. 6. 




"내가 네 입의 혀처럼 굴었으면 좋겠지? 순종적이고 착한 여자가 아니라서 미안."
"순종적인 건 바라지도 않아 존중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연애는 감정으로 하는 거지만 상황판단은 이성으로 하는 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나만한 여자를 어디서 만나? 솔직하고 센스 있고 능력 있는 데다가 서른셋인데도 아직 예뻐. 흔치 않아 이런 여자."
"그래 그렇게 착각에 빠져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 나는 나대로 어리고, 순하고, 착하고, 내조 잘하는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게. 이제 됐지?"
"언제 나한테 기대본 적이나 있어? 힘들어 보여서 다가가려고 하면 맨날 밀어내기나 하고. 궁금한 거 물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핸드폰은 꺼놓고 맨날 방문 걸어 잠그고 사람 전전긍긍하게 만든 게 누군데. 너 그러는 동안 내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탄 줄이나 알아?"
"왜 그랬는지 얘기해 줘? 싹수가 없어서 그랬어. 넌 누굴 위해서 참고, 기다리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거. 그런 싹수가 태어나면서부터 없었으니까. 지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니까. 그게 너야. 그런 너한테 뭘 바랐겠어? 뭘 기대했겠어?"
"그걸 하지 못했던 건 너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야.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은. 전에, 크루즈에서 나한테 말했지? 나랑 끝까지 가보겠다고. 여기가 우리 끝이야. 우린 여기서 끝내자.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우린 졌어, 시간한테도 졌고, 나는 너한테 졌고, 너는 나한테 졌고. 나는 너를 변하게 만들었고 너는 변했어. 나는 이미 너를 잃었고, 너는 이미 나를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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