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층의 재발견

by 토마

내가 사는 집은 4층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13층, 신혼집은 16층에서 살다 왔기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낮은 층수에서 사는 것이다. 저층을 선호해서 살게 된 것도 아니고 저층 매물이 저렴해서 고른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집을 살 당시에 살 만한 매물이 이 4층 매물 하나였기 때문에 고르게 된 집이다.


사실 집을 볼 때 뷰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애초에 멋진 호수나 강을 끼고 있는 집도 아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혼한 친구들도 하나 둘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종종 멋진 고층 뷰를 보내 올 때도 '창이 액자 같아서 바라볼 맛은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집에 있을 시간도 많지 않은데 뭐가 그리 중요한가 생각했다. 멋진 풍경은 여행을 갔을 때 만끽하면 되고 집은 오롯이 나의 쉼터가 된다면 그걸로 됐다고 여겼다. 게다가 낮은 층의 장점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안 와서 마음이 급할 땐 잰걸음으로 계단을 이용할 수 있어서 편하고 위급상황이 있을 땐 빠르고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으니 마음의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1년, 2년이 흐르고 나니 앞이 낮은 건물로 막혀 있는 갑갑한 뷰가 싫증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삭막하고 차가운 회색 건물이 화단에 있는 키가 큰 나무에게 가려진다는 점이지만 하늘을 막고 있는 그 나무가 슬쩍 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눈부시게 투명한 날, 해질녘 SNS에 노을 사진이 한 장, 두 장 올라올 때 알 수 없는 시기심이 일었다. 우리집은 나무에 가려진 하늘의 일부 조각만 보이는데, 제멋대로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이 아름다운 하늘을 집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러웠다. 그렇다고 뷰 때문에 이사를 가기엔 나는 이 집에 이미 많은 정이 들어 있었다. 투정하듯 남편에게 "우리집은 왜 하늘이 안 보여?"라고 얘기하면 "우리 이사갈까?"라는 모범답안이 돌아오지만 진짜 이사갈 마음은 없었기에 입만 삐죽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며 창밖을 내다 보는 시간보단 생활을 일궈가는 게 바빴기에 뷰의 아쉬움은 잊고 살았다. 그 사이 우리에겐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 아기가 생겼고 아기만을 바라 보다 보니 창밖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해가 나면 '날이 좋은가보다.', 어두우면 '오늘 비가 오려나보다.'처럼 나에겐 그저 조광(朝光)을 통해 날씨를 판단하는 도구로써만 기능했다. 아무리 멋진 하늘이 있고, 장엄한 강이 흘렀다 해도 아마 그 시기엔 거들떠 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1년의 육아라는 긴 터널이 지나고 이제 내 아기는 걸어 다니고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엄마, 아빠만 몇 달 동안 하길래 말이 느린가 싶었는데 점점 발음은 정교해지는 게 느껴져서 참 신기한 요즘이다. 근래에 말할 수 있는 단어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중 관심이 가고 필요한 단어만 얘기해서 참 맹랑하고 귀엽다. 그런데 아이가 요즘 꽂힌 단어 중 하나가 '까치'이다. 말을 시작하는 시기에 아이들은 새나 짹짹을 먼저 말하지 새 중에서도 정확히 '까치'라는 종을 먼저 얘기하는 아이는 몇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까치를 말할 수 있게 된 건 다 우리집이 저층인 덕분이다.


우리집에서 보이는, 4층까지 키가 큰 소나무에 때때로 까치와 산새들이 와서 앉았다 간다. 얇은 나무가지가 까치의 무게를 버거워하는지 심하게 흔들거릴 때도 있지만 까치들은 그마저도 놀이기구마냥 즐기는지 자리를 옮기지 않고 머무른다. 나무에 있는 벌레를 잡아 먹는지 한참을 파닥거리며 쪼아댈 때도 있고 다른곳에 집을 지으려는 것인지 나뭇가지를 물고 사라질 때도 있다. 우리 아이는 이 모든 걸 집에서 지켜보고 있다. 가끔 내 손을 잡고 '까치! 까치!'하면서 창문 앞으로 이끌기도 한다. 덕분에 나도 본의 아니게 '나무멍'을 하게 된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만 새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던 나인데 작은 새의 날갯짓이 우리 아이가 뛰놀 때 모습 같아서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집의 뷰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참 볼품 없는 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니 남부럽지 않은 뷰를 갖게 된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가슴이 부듯하다.


요즘은 창밖 풍경에 애정이 생겨서 커다란 식탁을 아예 창문과 마주보게 배치했다. 가끔 집에서 일을 할 때 창문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데 머리가 복잡할 때 새들의 움직임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일과 멀어져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오게 된다. 업무의 효율은 떨어질지언정 머리 속은 말끔하니 정돈되는 기분이라 좋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겨울만큼은 우리집 뷰를 좋아했다. 흰 눈이 말릴 새도 없이 푹푹 쌓여 내리는 날, 푸른 소나무에 눈이 무겁게 얹혀서 나뭇가지가 쭉 늘어져 있는 모습은 겨울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였다. 아이는 작년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눈이 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겨울의 참맛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올해 겨울 흰 눈이 두둑하게 쌓여 하얗게 변한 나무를 보고 얼마나 기뻐할지, 또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새로운 생의 환희를 느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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