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언어의 순수성

by 토마

나의 아이는 요즘 단어를 먹고 산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과 흥미로운 것들을 곧바로 흡수하여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 써먹어서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조사와 서술어를 자유자재로 변형해서 모국어 화자의 언어 습득이란 저런 것인가 감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국어 전공자인 나로선 한 인간이 자신의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가장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아이는 특히 '바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 '바다'도 제주도 여행에서 직접 바다를 보고 느낀 뒤 자주 발화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작은 시냇물도 고여있는 개울물도, 수영장도 모두 '바다'이다. 밖에 나가고 싶어서 신발을 신을 때 어딜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바다라고 대답한다. 맑고 투명한 제주도 바다가 저 작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외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물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물과 관련된 바다를 더 좋아하는 걸까? 바다를 발음할 때 입모양과 표정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바다와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데 아이가 바다를 말할 때마다 바다를 통째로 옮겨다 주고 싶은 마음이다.


유난히 뜨겁고 길었던 올여름이 10월이 되고 나서야 그 기세를 접고 물러갔다. 살에 와닿던 찐득했던 공기가 하루아침에 산뜻해졌다. 하루 사이에 바람의 온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지 기막힐 정도이다. 가을을 알리는 가장 반갑고 확실한 신호는 푸른 하늘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표정을 바꾸던 여름 하늘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청아한 가을 하늘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 시기를 놓칠 수 없다. 이렇게 공기는 맑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황금기에는 노상 밖으로 나가서 산다. 비싼 실내 체험 공간을 가지 않아도 자연 그 자체가 아이의 놀이터가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가을 날씨의 축복을 만끽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고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은 아이는 내 쪽 창문을 보더 별안간 "엄마, 바다!"라고 외쳤다. 아이가 바다라고 생각할 만한 저수지나 강이 있나 싶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창문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눈부시게 청청하고 선연한 가을 하늘이었다. 아, 아이에겐 파란 하늘이 바다로 보이는구나! 이 얼마나 편견 없는 순수함인가? 사실 늘 머리 위에 떠 있는 하늘을 아이에게 굳이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늘 말고도 아이가 처음 마주하는 대상은 많았기에 눈만 뜨면 보이는 하늘을 구태여 '하늘'이라고 이야기한 적은 몇 번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유독 푸르른 하늘을 보고 자기가 보았던 파란 바다를 연상했고 아는 단어인 바다를 외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 일화는 아이에게 열심히 단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흔히 아이와 순수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붙여 쓰지만 무지에서 오는 순수함도 있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낙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 많은 낱말을 흡수하고 그에 따라 더 넓은 세상을 읽어내는 걸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설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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