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품은 장미 한 송이
장미 한 송이가 말없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소리도 향기도 없이, 마치 노을 한 자락이 조용히 창틈으로 스며들 듯
감정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심히 흘러가던 일상에 작은 돌 하나가 던져져 파문을 일으키듯,
그 장미는 내 안에서 잊고 지내던 감정을 일깨웠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작가님의 두 번째 꽃 선물이다.
첫번째 꽃은 봄처럼 노란 프레지아.
햇살을 닮은 그 꽃은 내 안의 겨울을 조금씩 녹였고,
이번엔 말갛고 고요한 숨결을 머금은 흰 장미였다.
꽃이 선물이 되는 순간, 마음도 함께 건네진다는 걸 그분은 아는 듯했다.
화려한 꽃다발이 아닌 오직 한 송이,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끌기보다 마음을 눌러주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기념일도, 생일도 아닌 평범한 날, 그 장미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와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장미를 화병에 꽂았다.
그 순간부터, 장미는 내 하루에 자리를 내주었다.
거실 한켠,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그 꽃은 시간과 함께 조금씩 변해갔다.
물이 닿고 있음에도 서서히 마르고 있었다.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천천히 자기 손길을 얹어
새로운 얼굴로 피워내는 중이었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꽃잎의 결이 실핏줄처럼 얇고 섬세하다.
말라가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엔 더 깊은 생이 남아 있었다.
꽃이 시들며 내게 보여주는 건 소멸이 아니라 변주였다.
아름다움의 방식이 달라질 뿐, 그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꽃 선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움직인다.
그건 단지 예쁜 것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가 내 하루를 떠올려주었다는 사실,
그 마음을 조용히 전해주는 손끝의 온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건네는 위로.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꽃 속에 담겨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 자처하지만, 어떤 날은 꽃 한 송이가 한 편의 글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말이 없어 더 깊고, 소리가 없어 더 오래 남는 울림...
그런 마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살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매번 꽃을 받으며 배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거실 한켠엔, 말없이 마르며 시간을 품고 있는 장미 한 송이가 있다.
색이 바래고, 결이 얇아지고, 잎이 오므라드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생명력의 또 다른 이름을 마주한다.
말없이 피어나는 마음. 그 마음은 꽃이 되고,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무는 빛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