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놀이

(나와의 대화)

by 박경이



나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는 말이 없고,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묵묵히 나를 따라다니는 존재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이상한 위로가 있다. 마치 말없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 같았으므로.



어린 시절,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친구들과의 놀이 중 그림자놀이는 아무 준비물이 없어도 된다. 땅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네가 나보다 더 멋지게 춤춰 봐" 하고 속삭이기도 했다. 내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추듯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웃음 터뜨리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 순간이 내 유년 시절의 특별한 추억이었으리라.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어느 날,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림자를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어떤 질문보다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린 시절처럼 장난스러운 시선이 아닌, 조금은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그림자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나 자신을 고스란히 비춰주고 있다. 그의 존재는 나의 빛과 어둠, 그리고 흔들림마저도 담아내고 있었다.



나의 삶에서 마주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림자는 항상 동행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넘어져 손을 다쳤을 때도. 병원 대기실에서 초조함과 불안을 느끼며 힘들어하던 나는 창가에 비친 그림자에게서 묘한 위안을 느꼈다. 그때의 그림자는 단순히 빛이 만들어낸 흔적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위로와 공감의 형태처럼 느껴졌으니까.


어느 순간, 그림자가 내 몸의 윤곽을 따라오는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햇빛이 강할수록 그의 모습은 또렷해졌고, 흐린 날에는 희미해진다. 이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내 삶의 기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밝은 날에는 나의 존재가 분명하고 또렷했지만, 흐린 날에는 나조차 나를 잊어버릴 때가 있었기에.


삶의 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가 미래를 향해 걸어갈 때, 그림자 같은 과거는 늘 뒤따라온다. 하지만 때로는 뒤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편의 부상으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고, 매년 9월에 가족들의 생일을 챙기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기에.


그림자 같은 과거, 그림자 같은 추억들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 속에서 넘어졌던 순간도, 빛을 향해 나아갔던 순간도 모두 내 삶의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빛을 찾는 법을 배운 한 해였으니까.





그림자놀이는 나 자신과의 대화다. 내 안의 빛과 어둠, 나의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그리고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의 묵묵함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림자는 저녁 햇살 속에서 더욱 길고 선명하게 나를 따라왔다.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가 주는 위안은 그 어떤 말보다도 깊고 강렬했다. 밤이 되자 그림자는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햇빛이 비치는 날, 그는 또 다시 내 곁을 돌아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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