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스가 건넨 질문, 나는 어떤 어른이었을까

어려운 시절을 읽고 /찰스 디킨스 지음

by 박경이


그땐 몰랐다. 아이들에게 정답만 알려주는 것이 좋은 부모의 역할이라

믿었고, 말보단 결과가, 감정보단 성취가 중요하다고 여겼었기에. 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마음을 살피는 시선 하나가 아이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기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그 마음을 말로 꺼내고 나눌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을 붙들었던 문장이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리고, 꿈을 꾸는 존재다.’라는 말.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 과거의 내가 아이들을 대하던 방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소설 속에서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자녀들에게 감정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사실'만을 중요시하는 교육을 시킨다. 상상은 쓸모없고, 감정은 방해물이라 여긴 그는 철저하게 이성과 논리 중심의 교육을 고집한다. 결국 그 교육을 받은 루이사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사랑 없는 결혼, 자기 억압의 삶에 갇히게 된다. 이들의 파국은,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교육의 폐해이자, 사회 시스템의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보다 훨씬 경직된 교육 풍토 속에서 ‘옳고 그름’을 먼저 따졌고, “왜 그런 생각을 했니?”보다는 “그런 시간에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사랑이고 책임이라고 믿었기에.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성적을 걱정했고, 상상하는 시간보다는 계획표를 완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으니.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를 다루기 어렵다고 여겼고, 눈물은 약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정을 억누르고 자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남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는 걸.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적인 공감 능력과 도덕성을 함께 길러야 한다. 교육은 시험점수를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말이 늦은 아이에게 “왜 이것밖에 못 해”가 아니라 “무엇이 어려웠어?”라고 물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진짜 교육의 시작이기에.



디킨스는 산업화 사회에서 감정과 상상력이 말살되고, 인간이 기계처럼 취급되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티븐 블랙풀이라는 노동자 캐릭터는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사회의 벽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 소외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감정 없는 삶은 공허하다’는 루이자의 고백은, 수십 년을 살아온 나에게도 울림이 깊었다. 내가 그토록 아이들에게 주입했던 ‘해야만 하는 삶’은, 정말로 행복한 삶이었을까. 산업화된 코크타운의 회색빛 풍경은, 오늘날 콘크리트 숲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도시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성과’, ‘속도’, ‘효율’에만 몰두하며 우리는 정작 중요한 ‘사람다움’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인간을 위한 사회 구조와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 디킨스는 단지 개인의 불행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입시 위주의 교육, 감정표현을 미숙하게 여기는 문화, 성공만을 좇는 사회 구조 속에 살고 있다. 디킨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 작은 말들이 상처를 꿰매고, 마음을 열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려운 시절』은 19세기 영국의 이야기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성의 거울이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직장 생활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이성적이기를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상처 받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존재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따뜻한 세계를 물려주기 위해서, 『어려운 시절』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 단순한 진실을 되찾는 일이, 가장 위대한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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