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야 들리는 삶의 리듬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by 박경이

경력단절!

단어부터가 매끄럽지 않다. 도로 위에 하얗게 그어진 단절선처럼,삶의 흐름을 멈춰 세우는 냉정한 이름이다. 매끄럽게 이어지던 시간의 문장에, 의도치 않은 마침표가 찍힌 느낌이랄까.



이사 온 뒤로 나는 잠시 경단녀가 되었다. 어느 날은 뾰족하고, 또 어느 날은 무디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멈춘 걸까, 쉬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은 오리무중이다. 대신 시간이 생겼다. 갑작스레 쏟아진 자유는 처음엔 낯설고 무거웠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곧 그 빈자리를 취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드럼을 배웠다. 탁구도 시작했다. 급기야 성악 레슨까지 이어졌다. 생소한 리듬과 낯선 호흡 속에서 나는 자꾸만 ‘힘’을 주고 있었다. 스틱을 꼭 쥐었고, 라켓을 있는 힘껏 휘둘렀고, 복식호흡은 억지로 배에 힘을 주며 따라 했다.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힘 빼세요.”


힘을 빼라니. 그건 마치, 나를 놓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어깨에, 손에, 목에 들어간 긴장을 내려놓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삶을 놓아야 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왔는데, 힘을 빼면 망가지는 거 아닐까?’

그렇게 굳게 믿어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드럼 스틱은 내가 힘을 빼는 순간 처음으로 리듬을 탔다. 탁구 라켓은 손의 힘이 빠진 순간 부드럽게 공을 넘겼고, 성악의 음은 배가 아닌 허공을 스쳐 공명하며 퍼졌다. 아이러니였다. 힘을 뺀다고 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 비로소 ‘제대로’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자꾸만 힘을 준다. 애써 버티고, 견디고, 움켜쥔다. 어깨에 잔뜩 걸린 책임과 불안 앞에서 자꾸 긴장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건 물 위에 뜨는 연잎 같은 것. 너무 짓누르면 가라앉고, 적당히 맡겨야 비로소 흐른다.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맡기듯이, 때론 흘려보내야 할 것들을 흘려보내야 한다.



탁구장에서 공은 자꾸만 네트를 넘지 못했다. 코치가 말했다.

“라켓을 내려요. 공이 가는 길을 믿어야 돼요.”

믿는다. 내 앞의 삶이 생각보다 단단하고, 나는 그 안에서 흔들려도 괜찮다고.


성악 수업이 끝난 날, 나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조용히 내뱉었다. 허공에 스며드는 내 숨결이 꽃잎처럼

가볍게 흩어졌다.

나는 지금, 인생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힘을 빼고, 마음을 놓고, 때론 놓치는 법도 익히며.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전엔 단단한 것이 옳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진짜 강한 건, 부드러움이었다.


요즘 나는 잘 흔들린다.

탁구공처럼, 북소리처럼, 노래의 끝자락처럼.

그러나 그 안에 멋진 리듬이 있고, 쉼표가 있고, 울림이 있다.

한때는 흔들리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안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은 자란다는 걸.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