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 온도 내리기

늦게 배운 거리두기, 그러나 가장 확실한 성장의 시작

by 박경이

무슨 일이 생기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게 늘 나의 습관이다. 좋게 말하면 정이 많고 마음이 깊은 성격이지만,

돌이켜보면 남의 일에도 쉽게 마음이 가는 오지랖 많은 사람이었다. 그 관심이 따뜻함이 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간섭이 되어버리곤 했으니.

남의 일에 마음을 얹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고,그것이 배려라 믿어왔다.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마음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가지 않던 모임 단톡방이 꼭두새벽부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보다 더 자주 울리던 그 알림음에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메시지를 눌러본 순간,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묘한 기류를 감지했다.한 사람의 부주의한 말로 시작된 불편한 분위기,그리고 그것을 덮으려 애쓰는 듯한 방장의 연이은 메시지들.‘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그런 생각이 스쳤다.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나도 모르게 나가지도 않는 모임의 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걱정이라기보다,

괜한 개입 욕구랄까.그 순간 깨달았다.




잠시 후, 나는 다른 지인들에게 안부를 가장해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모임은 잘 하고 계시지요?”

누군가는 애써 말을 아꼈고,누군가는 속사정을 낱낱이 풀어놓았다.

그 순간 문득, ‘이게 오지랖이구나’ 싶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친한 친구들끼리 오해가 생겨 다투고 있었다.둘 다 내게 각자의 입장을 털어놓았고,나는 그 사이에서 중재를 자처했다.

“그 친구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네 마음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양쪽의 마음을 다독이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약간의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한쪽에게는 “그 친구가 미안해하더라”고,

다른 한쪽에게는 “네가 이해심이 넓어서 고마워하더라”고.

그렇게라도 마음이 풀리길 바랐다.

둘은 결국 화해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깔끔하진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들 사이에서 미묘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너, 그때 누구 편이었어?”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묘한 거리감이 섞여 있었다.
선의로 한 말이 오히려 나를 어색한 위치에 세워버린 것이다.
그 이후, 아무리 진심이라도 모든 일에 다 나서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날 저녁, 그렇게 시끄러웠던 아침 그 단톡방을 조용히 나오기로 결심했다.

손끝이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나가면 서운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 이제는 나를 위한 조용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채팅방을 나가시겠어요?’라는 문구 앞에서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손끝을 내렸다.

그 순간 느낀 해방감.

시원섭섭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의 후반전은 ‘더 많이 관계 맺는 법’이 아니라,‘덜 엮이며 평화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걸.누군가의 사소한 말에 흔들리기보다,내 안의 평온을 지키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걸.좋은 관계란 결국 적당한 거리에서 피어나는 것이며,그 거리를 지키는 것도 용기라는 걸.


점점 오지랖 대신 여백을 배우려 한다.굳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괜찮다.모든 것을 알고, 개입해야만 마음이 편한 줄 알았지만이제는 모르는 것도 괜찮다는 걸,모른 척하는 것이 때로는 더 따뜻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심과 간섭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그것이 나이 들어가며 배워야 할 새로운 품격 아닐까.




조금씩 내 안의 평화를 위해,내 일상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로 했다.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편안함이 중요하다는 걸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오지랖의 온도를 내리고,이제는 내 마음의 온도를 지키며 살기로.

누군가의 기대보다 나 자신의 온기에 귀 기울이며,오늘도 조용히 나를 단련해간다.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늦었지만 가장 확실한 성장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