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덴프로이데

타인의 불행이 건드리는 마음에 대하여

by 박경이


가끔은 마음 한쪽에서 기묘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든다.

누군가가 실수하거나 곤란해진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와 미묘한 기쁨이 스친다.

우리는 그것을 오래 숨겨두고 싶어 하지만, 감정은 핏줄 속을 흐르는 공기처럼 어느 날 조용히 새어나온다.


그 이름이 바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독일어에서 온 단어로, Schaden은 ‘손해’, Freude는 ‘기쁨’을 뜻한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작고 은밀한 기쁨.

낯설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감정이다.


예전에 함께 일한 동료가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감 있고, 늘 당당하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가장 옳다고 말하던 사람.나는 그의 추진력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늘 조심스러웠다. 의견이 묵살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애써 준비한 자료가 빛을 잃는 일도 드물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 지인이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 버벅거리며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작게 숨이 새어 나왔다.

‘아, 저 사람도 실수하는구나.’

아주 미세했지만 분명한 안도감. 뒤이어 찾아온 건 놀라움이었다.

왜 나는 이런 마음을 느꼈을까.

왜 그의 실수가 내게 위안이 되었을까.

그것은 샤덴프로이데라는, 인간의 마음이 가진 가장 숨기고 싶은 감정 중 하나였다.



요즘은 SNS를 열기만 해도 비교의 회로가 쉼 없이 돌아간다.

지인들의 폭이 넓다보니 자녀의 결혼 소식, 누군가의 여행 소식, 아이 성적표, 부모의 건강, 명품 가방,

새롭게 받게 되는 연금까지...

타인의 잘됨이 아프게 느껴지는 날도 있고, 반대로 완벽해 보이던 사람이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도 있다.

어떤 지인이 솔직하게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잘난 척하던 사람이 흔들릴 때, 나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 고백을 읽는 순간, 참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우리 마음 안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들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심리학자들은 샤덴프로이데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말한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비교로 인해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또 다른 증명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내 위치를 가늠하고,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잠시 내 마음을 추슬러 보기도 한다.

그 감정의 뿌리는 악의가 아니라, 결핍이다.

잘 버티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 나는 아직 괜찮다는 위로, 그리고 어쩌면 나도 누군가만큼 힘들다는 징후일지도.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완벽해 보이던 지인이 이직 문제로 고민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가 곧 스스로에게 놀라 자책했던 밤도 있었다.SNS에서 늘 행복한 일만 올리던 사람이 번아웃을 털어놓았을 때, 처음에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다가 이내 ‘우리 모두 힘들구나’ 하는 연민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들은 내가 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샤덴프로이데는 마음이 지쳤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잘됨을 축하해줄 힘이 부족한 날,

내가 애써 버티고 있다고 믿고 싶은 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흔들림에서 위로를 찾는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을 없애거나 숨기려 애쓰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 나는 지금 조금 외롭구나.

나는 내가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그래서 누군가의 실수가 잠시 나를 가볍게 했구나.'

이 작은 인정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진다.정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더 깊은 사람이 되는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감정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길이라는 사실.

우리가 누군가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숙해진 마음이며,

누군가의 불행에서 순간적인 안도를 느꼈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마음이 보내는 작은 도움 요청일 뿐이다.


샤덴프로이데를 알게 된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늘까지 이해하려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렇게 깨닫는다.

“타인의 불행이 위안으로 느껴지는 순간,

사실은 내가 더 많이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깨달음이 우리를 더 따뜻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줄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