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월의 여행

by 박경이

등 떠밀려 얼떨결에 여행하는 열차에 올랐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때쯤, 매번 여행길에 나섰다. 이번 여행은 목적지를 정한 적도 없는데, 발걸음은 이미 종착지 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낯설어야 했건만 그렇지 않았다. 매번 시작하는 여행은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듯이, 나 또한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출발을 결심한 이상, 이 여정은 이미 내 것이다.


계절의 풍경은 익어만 가고 새벽빛처럼 맑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선했다. 역에 멈출 때마다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벼운 발걸음이 전해졌고,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거장은 반복되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역에 멈추는 마다 왠지 답답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달려온 기차의 끝에서 드디어 11월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11월은 마치 긴 여정의 마지막 숨 고르기 같은 시간이다.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기 전, 한 해라는 긴 여정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계절이다. 나는 이 계절에 내려 앉아 가능을 열어본다. 기억에는 한 해 동안 나를 스쳐간 풍경들이 어우러져 있다. 어떤 것은 반짝이는 보물 같고, 어떤 것은 다시 꺼내보기 두려운 기억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기차는 곧 다시 출발할 것이다. 남은 한 해를 향해 마지막 구간을 달려가겠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11월이라는 정류장은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주었고, 남은 여정을 더 가볍고 단단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해주었으니까.


창밖의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겨울의 문턱에서 서 있는 들판은 껍질이지만, 그 아래엔 봄을 품은 씨앗이 잠들어 있다. 마치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처럼. 이제는 그 가능성을 믿으며, 기차가 다시 움직이길 기다린다. 이 여정은 여전히 내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