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배워가는 거리의 미학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신기하게도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일부러 붙잡고, 설명하고, 이해받기 위해 애썼던 사이들이
어느 순간 저 멀리 흔들리는 고목의 가지처럼 자연스레 떨어져 나간다.
처음엔 그 모습이 서늘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은 내 탓도, 상대 탓도 아닌 삶의 순환이라는 것을.
사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관계를 품고 살아간다.
동네 이웃, 사회 동료, 학교 친구, 오랜 지인을 비롯해
SNS로만 연결된 인연까지. 젊을 때는 ‘넓은 인맥’이 능력이라고 믿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알고 있는 것이 든든했고,
그 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많은 관계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걸까.'
억지로 붙잡기보다는 흐르는 물처럼 관계가 흘러가도록 조용히 두었다.
신기하게도 그 결정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한다.
말라버린 가지, 열매를 맺지 못한 가지, 병든 가지를 잘라내야 남은 가지에
더 온전한 영양이 흐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고 배워온 세대였지만,
우리가 잘라낸 가지가 사실은 더 큰 성장을 위한
여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관계를 정리하는 건 결코 냉정함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필요했던 '숨 쉴 틈'일지도...
어떤 관계는 깊은 뿌리를 내려 평생의 나이테가 되어주고,
어떤 관계는 계절꽃처럼 잠깐 피었다가 져도 된다.
모든 꽃이 오래 피지 않아도 아름답듯이,
모든 인연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다.
관계의 가지치기는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다.
피곤한 관계, 무게가 더해지는 관계, 억지로 맞춰야 하는 관계는
어느 순간 삶의 결을 흐리고 내 마음의 햇볕을 가린다.
반대로, 함께 있을 때 편안해지고, 말 한마디가 지지대처럼 느껴지고,
마음이 밝아지는 사람은 가지치기 뒤에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가끔 이런 불안을 느낄수도 있다.
'줄어든 관계의 수만큼 내가 쓸쓸해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진짜 외로움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진심이 닿지 않는 관계를 계속 품고 있을 때 찾아온다.
요즘 나는 이런 기준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관계는 내 마음에 빛을 주는가, 아니면 그늘을 만드는가.
그리고 그 답이 분명해질수록 가지치기는 더 자연스럽고, 더 단단해진다.
나이가 든다는 건,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살며시 떨어져 나가는 인연이 있어야
더 귀한 인연이 남는다.
삶의 텃밭에서 군더더기를 정리하듯,
지금의 나는 관계의 가지치기를 통해
더 건강한 마음의 숲을 가꾸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