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의 어른이 자손에게 일러주는 가르침을 가훈이라 한다.
그 말이 요즘 세대에게는 다소 낡은 액자처럼 낡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훈이 있는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집만의 중심이 느껴진다.
흔들릴 때 돌아갈 문장이 있고, 다툴 때 붙들 기준이 있으며,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지인의 집 거실 한쪽 벽에 흰 종이 위에 또박또박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시어머님이 쓰신 거란다.
“나갈 때 불 꺼라.”
처음에는 웃음이 났다.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생활적이어서.
마치 엄마의 잔소리를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거창한 말이 아니었는데도...
그래서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거창한 인생가훈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의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다는 고백이리라.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문장들이 자꾸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거창한 말을 사랑한다.
성공, 성장, 꿈, 비전.
빛나는 단어들은 늘 앞을 향해 우리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정작 삶을 지탱하는 힘은 그런 단어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문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불을 끈다는 것은 단순히 스위치를 내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머물렀던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다.
나의 온기를 정돈하고, 흔적을 가지런히 접어두는 일이다.
있을 때는 따뜻하게 머물고,
떠날 때는 조용히 정리하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배려가 아닐까.
마치 하루를 살고 난 뒤, 마음속 책갈피를 조용히 덮는 것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방을 지나간다.
가정이라는 방, 직장이라는 방, 관계라는 방.
그 방마다 우리는 말을 남기고, 감정을 남기고, 때로는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그 모든 방에서 우리는 과연 ‘불’을 잘 끄고 나오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떠난 자리마다 불을 켜두고 간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말들, 풀지 못한 감정들, 식지 않은 오해들.
그것들은 다음 사람의 마음을 데우기보다는, 오히려 태워버리기도 한다.
남겨진 불빛은 따뜻함이 아니라, 때로는 피로가 될테니까.
내 삶에도 하나의 가훈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누구에게 자랑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하루를 시작할 때 한 번,
하루를 마칠 때 한 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