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억의 음식 앞에서
주말에 재래시장에 갔다가 깻잎 한 무더기를 사 왔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오래 묻어 두었던 그리움을 흔들어 깨울 줄은 정말 몰랐다.
시장 좌판 위에 수북이 쌓인 깻잎은 그저 싱싱해 보였고, 초록빛이 단정해 보여 반찬으로 해 먹으면 좋겠다 싶어 샀을 뿐이었다. 장바구니 안에 담길 때까지도 그것은 그저 채소였고, 저녁 식탁 위에 오를 평범한 식재료였다. 추억은 아직 봉지 속에서 잠들어 있었고,그 잠든 시간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깻잎을 꺼냈다.
한 장 한 장 물에 씻어 들추는데, 처치 곤란할 정도의 양이라 차곡차곡 포갠 깻잎을 삼발이에 올리고 한찜 찌기 시작했다. 주방에 김이 차오르고, 초록의 결이 뜨거운 숨을 만나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뻣뻣하던 잎들이 열기를 견디며 스르르 몸을 낮추는 모습은, 마치 세월 앞에서 사람이 차츰 부드러워지는 풍경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얗게 피어오른 김 사이로 잊고 있던 한 시절이 걸어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시어머니가 떠오른 것은.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깻잎은 시장에서 사 온 것이 아니었다.
집 앞마당에서 직접 따다가 만드신 깻잎이었다. 햇볕을 적당히 머금은 잎들을 손수 따오셔서, 흙과 바람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깻잎을 큰 대야에 담아 씻고, 차곡차곡 포개어 찌고, 양념을 얹어 반찬을 만드셨다.
그 손길은 늘 바빴지만 이상하게도 서두름이 없었다. 마치 음식이 아니라 하루의 사랑을 빚는 사람처럼, 한 장 한 장에 정성을 눌러 담으셨다.
그 깻잎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다.
밥상 위에 놓이면 다른 반찬들이 잠시 숨을 죽일 만큼 존재감이 있었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과 파, 깨소금과 참기름이 어우러진 양념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었다.
짭조름하고 향긋하고, 부드럽게 숨이 죽은 깻잎은 밥 한 숟갈을 감싸 안으며 입안에서 천천히 풀렸다.
그 맛은 혀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많이 먹어라”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늘 먼저 챙기시던 마음이 있었고, 식구들 허기가 행여 서럽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배어 있었으리라.
그 시절 그것을 다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저 맛있다, 솜씨가 좋으시다, 손이 많이 가셨겠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가장 귀한 것을 가장 평범한 풍경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다. 늘 있던 밥상, 늘 해주시던
반찬, 늘 부엌에 계시던 사람. 없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사랑은 늘 조용한 얼굴을 하고 와서, 사라진 뒤에야 제 이름을 또렷하게 밝힌다.
삼발이 위에서 한 번 숨이 죽은 깻잎을 바라보는데, 가슴속에서도 무언가 푹 꺼져 내렸다.
그 향이었다. 그 온도였다. 그 찐 깻잎의 눅진하고도 포근한 냄새가, 오래전 시어머니의 부엌 문을 열어젖혔다. 부엌 한쪽에서 반찬통을 꺼내시던 모습, 물기 묻은 손으로 “이건 가져가라” 하시며 무심한 듯 건네시던 말투가 눈앞에 너무도 선명하게 살아났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손끝, 냄새, 온도, 식탁의 모서리 같은 것들까지.
지금 시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예전처럼 앞마당에 나가 깻잎을 따실 수도 없고, 큰 대야에 채소를 씻으실 수도 없다. 당신 손으로 만드셨던 그 추억의 음식도 이제는 예전처럼 드실 수 없다. 그 사실이 그날따라 사무치게 아팠다. 나는 그저 깻잎을 찌고 있었을 뿐인데, 왜 눈물은 저 혼자 길을 찾아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싱싱한 초록은 분명 살아 있는 빛인데, 그날 내 눈에는 오래된 이별의 색처럼 보였다. 부엌에 퍼지는 향은 반찬 냄새이면서 동시에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냄새였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꼭 깻잎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늦게 알아차린 마음들, 제대로 감사하지 못했던 순간들, 당연하게 받기만 했던 사랑들, 다시는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잎의 초록 앞에서조차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그런 저녁. 그날 내가 삼발이에서 꺼낸 것은 찐 깻잎이 아니라, 끝내 다 전하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 한 겹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