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로 보내는 사랑

코이의 법칙

by 박경이

딸냄이 영상통화 화면 너머로 뜬금없이 기타를 들이밀었다.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웃음부터 났다.

때아닌 기타라니, 처음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그저 치는 흉내만 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의 손끝은 생각보다 제법 자연스러웠고, 줄 위를 옮겨 다니는 손놀림도 꽤 곧잘 어울렸다.

어설픈 장난이 아니라, 어느새 자기만의 시간을 배우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았다.

아이 말로는 그곳에서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기타를 장만했단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아이가 먼 타지에서 제 손으로 쉼 하나를 마련했다는 사실이, 그날은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문득 ‘코이의 법칙’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작은 어항에서 자란 코이는 그 크기만큼만 자라지만, 더 넓은 연못과 강물에서는 훨씬 크게 자란다고 했다. 사람이든 물고기든, 결국 크기를 정하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그 몸을 둘러싼 환경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부모의 사랑은 자주 어항을 닮는다. 맑은 물을 갈아 주고, 먹이를 챙겨 주고, 추위와 위험을 막아 주는 일. 가능한 한 안전하게, 가능한 한 상처 없이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사랑은 대개 보호의 얼굴로 찾아오니까.



그래서 나는 딸 아이에게 자꾸만 가장 좋은 길을 골라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안전한 길, 가장 덜 흔들리는 길, 실패할 확률이 적은 길. 큰 파도 없는 물에서 헤엄치게 하고 싶고, 낯선 물살에 떠밀리는 일을 막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너무 안전한 물은 때로 아이를 작게 만들기도했으리라.

위험이 없다는 것은 때로 도전도 없다는 뜻이고, 상처가 없다는 것은 때로 자기 힘을 써 볼 기회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작은 수족관 안의 물고기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제 몸의 힘을 다해 멀리 헤엄쳐 볼 일은 많지 않으니까.


어쩜 아이는 본래부터 더 넓은 물을 품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먼저 겁을 내고, 내가 먼저 안전을 사랑해서, 자꾸 어항을 닦고 물의 높이를 재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의 인생은 수족관이 아니라 강가에서 더 잘 자랄 운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거센 물살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돌부리에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서 제 지느러미의 힘을 알고 제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깊은 물을 건너 본 물고기만이 넓은 물의 냄새를 알 것이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어쩌면 모든 위험을 막아 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물길을 믿도록 지켜봐 주는 일이다. 넘어지지 않게 붙드는 손보다,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 주는 눈빛.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말보다, 멀리 가도 괜찮다고 보내 주는 마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헤엄칠수록 부모의 기도는 더 길어지고, 염려는 더 깊어진다. 그래도 사랑은 언젠가 놓아 주는 쪽으로 성숙해야 한다. 품어 주되 가두지 않고, 바라보되 대신 살아 주지 않는 것. 그 어려운 일을 배우는 것이 부모의 몫일 것이다.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아이가 치던 기타 소리가 오래 귓가에 남았다.

음 하나하나는 서툴렀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는 자유가 있었다. 누가 정해 준 악보가 아니라 자기 숨결로 고른 리듬 같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잘 크고 있다고. 내가 아는 방식이 아니라도, 내가 정해 준 순서가 아니라도,

딸 아이는 제 스스로 강을 따라 제대로 자라고 있다고.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르게 기도한다.

아이를 가장 안전한 곳에 두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가장 넓은 삶을 살아낼 용기를 달라고. 작은 그릇 속의 평온에 머물지 않고, 자기 몸에 맞는 크기로 자라게 해 달라고. 수족관의 반짝임보다 강물의 깊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언젠가 아이가 제 삶의 한가운데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믿고 보내는 힘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