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한 '기준'과 내가 일궈가는 '수준' 사이에서 세상이 정한 눈금
2월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봄이 온다는 소식은 들리는데, 마음 한구석엔 왠지 모를 조급함이 들어앉아 있곤 하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자'에 둘러싸여 삽니다. 연봉의 액수, 아파트의 평수, 자녀의 성적 같은 세상의 촘촘한 눈금들이 우리 삶을 쉼 없이 재단합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그 기준(Standard)에 내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면, 문득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에는 온 힘을 쏟으면서도, 정작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는 답을 잃어버린 채 말이죠.
오래전 삶의 화두로 삼고 마음 깊이 갈무리해 두었던 물음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달콤한 칭찬만 바라는 어린아이인가, 아니면 삶의 쓴맛도 기꺼이 삼켜낼 줄 아는 어른인가."
어린아이의 세상은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배가 고프면 울음을 터뜨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 세상을 원망하죠.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내 삶의 수준(Level)이 높아진다는 것은 달콤한 위로라는 '젖'을 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때로는 인생이 던지는 쓰디쓴 시련과 비난조차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묵묵히 씹어 넘길 줄 아는 힘.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의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 만든 '기준'의 노예가 됩니다. "그는 저만치 앞서갔는데 나는 왜 제자리인가"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쁘죠. 하지만 시선을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 비로소 나만의 '수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평가라는 파도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깊게 뿌리내린 나무는 흔들릴지언정 뽑히지는 않듯, 내면의 수준을 높인 사람은 세상의 기준이 요동쳐도 자기만의 평온을 지켜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눈금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분주했나요? 혹시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밀려, 정작 내 마음의 수준을 돌보는 일은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요.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대단한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서운한 감정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타인의 슬픔에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 보태는 그 작은 마음 씀씀이가 곧 우리의 수준이 됩니다. 2월의 중순, 우리 모두가 남의 자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품격 있는 '수준'을 일궈가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