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라는 세상의 성급한 결론에 답함
몇 년 전 영화 <더 웨일>로 돌아온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의 부활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한때 최고의 스타였으나 우울증과 고립 속에 자신을 가뒀던 그가, 2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일어선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270kg의 거구가 된 주인공이 스스로를 '실패자'라 부르면서도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투는, 우리 모두의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성과가 없거나 남들보다 뒤처졌을 때 스스로에게 '루저(Loser)'라는 라벨을 붙이곤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것처럼,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자존감을 갉아먹히며 살아갑니다. 연봉, 아파트 평수, 자녀의 성공 같은 잣대들이 우리 인생에 너무 쉽게 마침표를 찍으려 듭니다.
하지만 인류의 아주 오래된 기록을 들여다보면, '성공한 인생'의 전형이라 믿는 한 노인의 시작 또한 지독한 '루저'의 삶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75세가 되도록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한 남자, '아브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저주받은 운명이라 여겨지던 '자식 없는 노인'이었고, 집안의 그늘에 가려져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75년이라는 긴 세월을 타인의 의지에 맡긴 채 방랑자로 살아온 그의 삶에 무슨 대단한 희망이 있었을까요.
남들이 보기엔 늦어도 한참 늦은, 이미 실패로 결론 난 것 같은 그의 인생에 어느 날 새로운 부름이 찾아옵니다.
“이제, 너를 위해 떠나라.”
이 문장 속에는 흥미로운 고대 언어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떠나라'는 말 앞에 **'너를 위해(Lech Lecha)'**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기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동안 타인의 시선이나 과거의 실패라는 감옥에 갇혀 살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너라는 존재의 고유한 가치를 찾기 위해 움직여라”**라는 묵직한 권고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숨겨진 루저'들이 참 많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은퇴 후 상실감에 젖은 아버지들, 자녀의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쏟았으나 이제는 텅 빈 거실에서 허탈해하는 어머니들. 이분들은 가끔 묻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나,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견뎌온 그 지루한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더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숫자로 평가하지만, 삶의 근원은 우리를 단 한 순간도 가치 없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삶에 눈에 보이는 싹이 돋지 않았더라도, 차가운 2월의 땅속에서 수천 개의 뿌리가 봄을 준비하듯 당신의 삶도 지금 새로운 계절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75세에 워드프레스를 만들고, 유튜브를 운영하며, 이제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한 노목사의 고백입니다"**
�️ 박 목사의 다른 글 보기 (워드프레스): [grandmastory117.com]
브런치에 올리는 글 외에도, 제가 정성껏 가꾸고 있는 개인 공간 **[그랜마 스토리]**에는 조금 더 소박하고 진솔한 저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언제든 편히 놀러 오셔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 목소리로 전하는 위로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bNreKWHsfN4
위의 글이 바탕이 된 설교 동영상입니다. 저에게도 주는 응원이었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소중한 걸음을 함께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