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광야를 지나야 만 들을 수 있을까

광야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것

by 박혜원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인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습니다.


애써 쌓아 올린 것이 흔들리고, 믿고 있던 관계가 멀어지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순간 힘을 잃는 시간.

그럴 때 우리는 말합니다.


“지금, 광야를 걷는 것 같다.”


광야는 막막함의 다른 이름 같습니다.

앞은 보이지 않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고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는 자리.


그런데 히브리어로 ‘광야’를 뜻하는 말은
‘말씀’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야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이 아니라

다른 소리가 멈추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소란이 사라질 때


우리는 평소에 참 많은 소리 속에 살아갑니다.


해야 할 일의 소리, 비교의 소리, 불안의 소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소리.

그 소리들 속에서는 정작 중요한 질문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가.


광야는 그 소리들을 하나씩 줄여 버립니다. 의지하던 것이 사라지고,

자신 있던 부분이 흔들리고, 당연하게 여기던 기반이 무너질 때

비로소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야는 우리를 벌주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잘될 때는 잘 모르는 것들


돌이켜 보면 삶이 잘 굴러갈 때는
내가 무엇으로 사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능력이라 여겼고, 내 선택이라 믿었고, 내 노력의 결과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 꺾이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광야는 자존심을 벗겨내고 본질만 남깁니다.

남는 것이 적을수록 붙들어야 할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인생에서 가장 깊은 기도는 대개 형통할 때가 아니라
막막할 때 나옵니다.


말은 길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놓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그 단순한 기도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정리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내려놓는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결과를 내려놓고, 체면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자리.


그렇게 덜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하나가 또렷해집니다.


내가 결국 붙들 수밖에 없는 것.
내가 끝내 놓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때, 조용히 한 문장이 마음에 남습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것이 남는 자리라는 생각.


당신의 광야는 어디입니까


혹시 지금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흔들림 속에 서 계십니까.

그렇다면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광야는 당신을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당신을 가볍게 만드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덜어낸 만큼 선명해지고,
비워낸 만큼 단단해집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라 조용히 다시 시작되는 자리.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 때, 비로소 들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광야에서는
무엇이 들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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