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색깔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나무늘보가 건네는 위로

by 박혜원


이른 아침 오래전 꾸었던 기묘한 꿈 하나를 복기해 봅니다.


꿈속에서 저는 지옥이라 불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이웃들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 어리둥절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곳엔 '진심'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차가운 밀랍 인형의 그것처럼 가짜였습니다. 속으로는 끊임없이 남을 탓하고 분노하면서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표정을 짓고 있는 풍경. 그것이 제가 꿈에서 본 지옥의 민낯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열매 없는 바쁨에 몸을 맡기고, 진짜 내 마음을 숨긴 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리처드 코킨 목사는 현대인들이 **'카멜레온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경고합니다. 카멜레온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에 맞춰 수시로 몸의 색깔을 바꿉니다. 적응력이 좋다는 칭찬 뒤에, 정작 거울 속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서글픈 풍경이 숨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안의 빛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삶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목사답게' 보이기 위한 또 다른 위장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빛은 어둠과 섞일 수 없고, 진심은 가짜와 공존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늘, 카멜레온처럼 사는 고단함을 내려놓고 **'나무늘보'**처럼 살아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나무늘보를 게으른 동물로만 여기지만, 사실 나무늘보는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기 색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나무늘보의 털 안에는 이끼가 자랍니다. 털 속 환경이 이끼가 자라기에 딱 알맞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달리, 나무늘보는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끼)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배어 나와 몸의 색깔이 됩니다.


진짜 착함, 진짜 의로움, 진짜 진실함은 그런 것입니다. 억지로 '착한 척' 색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빛을 품고 있으면 그 빛이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번져 나가는 것이죠.


나무늘보는 느리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주변의 작은 생명들에게 자기 털을 내어주며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우리 역시 조금 느리더라도, 남의 눈치를 보느라 수시로 색을 바꾸는 고단한 카멜레온의 삶을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안에 어떤 빛을 품고 있는지 당당히 드러내는 정직한 선언. 오늘 하루,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그 따뜻하고 투명한 '빛의 색깔'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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