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by 박혜원

하루 중 가장 쓸쓸함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세상을 비추던 빛이 물러가고 어둠이 스며들 때면 마음 한구석에 형체 모를 외로움이 고개를 듭니다. 그럴 때면 문득 자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혹시 내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내 모습은 잊힌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는 그의 작품 <세 개의 십자가> 속에 흥미로운 비밀 하나를 심어두었습니다. 거룩하고도 처참한 처형장의 풍경 속에,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중세 모자를 쓴 남자를 그려 넣은 것이지요. 바로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그는 왜 성스러운 기록 한복판에 자신의 얼굴을 쓱 끼워 넣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나 역시 저 연약한 인간들 속에 함께 있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입니다”라는 정직한 항복 선언이었을 겁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삶의 뒤안길에서 깨닫는 것은, ‘목사답게’ 보이려 했던 그 모든 노력이 어쩌면 내 안의 빛을 가리는 또 다른 위장이 아니었나 하는 점입니다. 렘브란트가 자신의 민낯을 그림 속에 남겼듯, 저 역시 거창한 수식어를 떼어내고 그저 여러분과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소박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렘브란트, <세 개의 십자가> 중 일부" 혹은 "자신의 못난 모습까지 그림에 담았던 렘브란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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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주 특별한 용기를 낸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평생을 거칠게 살았던, 세상의 시선으로는 지워버려야 할 범죄자였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곁에 없던 철저한 고독의 순간, 그는 곁에 있는 한 분에게 나직이 부탁했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소서.”


그는 자격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자신의 초라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을 잊지 않을 유일한 존재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긴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간절한 요청에 상대는 즉각적으로 응답했습니다. 과거를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주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했습니다.


혹시 지금, 세상에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느껴져 막막하신가요? 내가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고 이기적이라 금방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우리 존재를 빚은 그 근원적인 시선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나를 잊고 싶은 순간에도, 나의 못난 모습까지 다 알고서도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이 ‘기억의 끈’이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큰 안심입니다.


전인권 씨의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거창한 충성심이나 대단한 업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 나를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는 그 안심 하나로, 우리는 오늘도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혼자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당신을 결코 잊지 않는 그분의 따뜻한 기억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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