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보이지 않아 누리는 뜻밖의 안심
살다 보면 참 당혹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곤 합니다. 죽어라 달렸는데 1등을 놓치기도 하고, 남들보다 용감하게 뛰어들었는데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노력과 결과가 정비례하는 세상을 꿈꾸지만, 실제 우리 삶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늘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합니다.
성경 전도서의 기록자이자 지혜의 왕이라 불린 솔로몬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의외성'이라는 무대가 우리 삶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 시가쿠사 거리에는 묘한 동상이 하나 서 있습니다. 앞머리는 무성한데 뒷머리는 매끈한 대머리이고, 발에는 날개가 달린 괴상한 형상이지요. 그 동상의 이름은 '기회(Opportunity)'입니다. 기회가 올 때는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앞머리가 길지만, 일단 지나가 버리면 뒷머리가 매끈해 결코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잡기 위해 평생을 전력질주합니다. 그러나 기회를 붙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그 기회가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듄: 파트 2>**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주인공 폴은 미래를 완벽하게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래를 아는 영웅이라 부러워했지만, 정작 폴 본인은 지독한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내다본 미래가 참혹한 전쟁과 소중한 이들의 희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과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자유를 빼앗는 무거운 족쇄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어쩌면 우리가 내일 일을 알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안다면, 우리는 과연 오늘 마주하는 사람의 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끝을 모르기에 우리는 비로소 오늘 주어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고, 내일의 가능성을 소망하며 잠들 수 있습니다.
전도서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대국에 포위되어 멸망할 위기에 처한 작은 성읍을 한 가난한 지혜자가 구해낸 사건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를 금방 잊어버렸고, 그는 여전히 멸시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늘 화려한 용사나 목소리 큰 권력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선을 행하는 '이름 없는 지혜자들'에 의해 지탱됩니다. 그 가난한 지혜자의 결단이 성을 지켰듯, 우리 삶을 지키는 힘 또한 우리의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거대한 섭리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도 재능이나 철저한 계획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슬픈 비가 내렸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당시에는 "왜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라며 원망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어긋난 계획들 덕분에 제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인생이 매번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의 작은 계획보다 훨씬 더 크고 장엄한 '삶의 거대한 섭리'가 나를 선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십시오. 내 의지를 조금 내려놓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의외성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짜 평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안심(安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