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숙면을 위해 암막 커튼을 쳐도,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결국 아침이 왔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무감각한 일상 속에 갇혀 있어도, 우리 영혼을 깨우는 빛의 신호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12월, 교회력으로는 대림절(待臨節)이라 부르는 이 시기가 바로 그 '틈새 빛'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영적인 잠'**에 빠져 있곤 합니다.
왜 우리는 무기력한 잠에 빠지는가
여기서 말하는 '잠'은 육체적인 피로가 아닙니다. 삶에 대한 무기력, 무관심, 그리고 감동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무감각해질까요?
저희 어머니는 생전 낚시를 하실 때, 찌 하나를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계셨습니다. 내겐 지루해 보였지만 어머니는 즐거워하셨습니다. 그 찌가 움직일 때의 짜릿한 기쁨, 즉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삶에서 무기력한 이유는, 어쩌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와 내 삶에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설렘'**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기대가 사라진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이라는 잠 속으로 도망칩니다.
어둠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힘, '품위'
잠든 사람은 물결치는 대로 떠내려갑니다. 세상의 부정적인 뉴스, 다툼, 쾌락의 유혹에 쉽게 휩쓸립니다. 성경 로마서는 이런 우리에게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서 '단정히'라는 말의 본래 뜻은 **'품위 있게'**입니다.
진정한 품위란 명품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 같은 현실 속에서도,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휩쓸리지 않고 자신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내면의 힘이 바로 품위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곧 이 품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옷을 갈아입는 시간
그렇다면 이 품위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마음의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사상가 에머슨은 말했습니다. "슬픔은 뒤를 보고 근심은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믿음은 위를 본다."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어둠의 옷'을 벗고, 적극적인 선(善)과 긍정이라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무기력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우리는 흔히 기다림을 지루한 인내의 시간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황지우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나요? 그때의 기다림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설렘'**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빛의 갑옷을 입고 내 삶에 찾아올 은혜를 적극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기다림입니다.
지금 당신의 기다림은 지루함입니까, 아니면 설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