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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Dec 11. 2023

과속 단속에 두 번 걸렸다[신혼여행은 처음]

요르단 과속 단속 카메라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 찍는지 알 길이 없다.

요르단에서 운전하다가 과속 단속에 두 번 걸렸다.

나는 한국에서 15년 정도 운전하면서 속도 제한을 어긴 게 두 번뿐이다.

교통 범칙금으로 낸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기에 정확히 기억난다.

단 두 번뿐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열흘 만에 15년 치를 위반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여기 제한 속도는 되게 짜다.

일반 도로는 60km, 고속도로는 80km가 최고 속도이다.

이걸 위반하면 범칙금이 붙는데 위반 폭이 커질수록 범칙금도 비싸진다.

시내(일반 도로)에서는 크게 걱정할 게 없다.

교통 체증이 워낙 심해서 제한 속도를 넘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예전에 퇴근길 올림픽도로를 달리면서 80km 속도 제한 카메라를 보면서 무슨 쓸모인가 싶었던 게 생각났다.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고속도로. 어때 이걸 보고도 안 달리고 싶겠어?
문제는 고속도로다.


고속도로는 시내와 달리 전혀 막히지 않는다.

차가 전혀 없다.

한국 운전에 찌들어 있는 나는 요르단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즐거웠다.

즐거운 고속도로 여정은 세 번이었다.

암만(수도)에서 와디무사(페트라)를 가는 길에 한 번,

그리고 와디무사에서 아카바(홍해)로 가는 길에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이 세 번의 여정에서 과속 단속에 두 번 걸렸다.


왜 피하지 못했냐고?

간단하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언제 찍는지 알 길이 없어서다.


내비게이션이 안 알려주냐고?

안 알려준다.


내비게이션이 바보냐고?

알려주지 않는 게 아니라 알려줄 수가 없다.

여기에는 고정형(도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과 박스형(길가에 세워둔 카메라), 구간단속형(일정 거리와 이동 시간을 계산해 평균 속도를 내는 카메라) 따위는 없다.

적어도 내가 고속도로에서 이런 카메라를 본 적은 없다.

오로지 경찰관이 속도를 측정하는 이동식 카메라만 존재한다.

내비게이션은 경찰관의 단속 스케줄까지 꿰고 있지는 못(할 듯)한다.


이동식 단속 구간이라는 정도는 알려주지 않느냐고?

갓 구글의 내비게이션이 안 알려주는 걸 보면 정말 모르는 듯하다.

아니면 이동식 단속 구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거나.


표지판으로 단속 중이라고 고지하지 않느냐고?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카메라 단속 중이라는 표지판을 보지 못했다.


아랍어로 쓰여 있어서 못 읽은 게 아니냐고?

그래도 최소한 한국이라면 카메라 그림은 그려놓았을 텐데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고속도로 중간. 이런 길에서 규정 속도 지킬 수 있겠어?

차근히 그때 일을 복기해보자.

암만에서 와디무사로 가는 길에 경찰관을 만난 건 내리만 커브길에서였다.

안보이니 밟았는데 그 길 끝 경찰관이 서 있었다.

차를 세우라고 하길래 세우고 최대한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이미 경찰 검문을 경험해 본 터라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를 빌릴 때 받은 카드를 달라고 했다.

나는 여유 없는 표정이 돼, 하라는 대로 했다.

그는 카드를 돌려주더니 가는 길 가라고 했다.


범칙금을 안 걷네?

여기서 나와 처는 스몰토크를 꽃피웠다.

우리는 어차피 한국으로 출국할 테니 범칙금 안 내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

아니야 우리가 언제일지 몰라도 다시 요르단을 오게 되면 기록이 남아 입국이 거절될 거야,

그래 비티에스 보유국 코리아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되니까 내도록 하자,

그래도 한두 푼도 아니고 범칙금을 내려니까 아까운 건 사실이다,

따위의 실없는 소리를 이어나갔다.

부질없는 얘기였다.

아까 경찰관이 가져간 카드는 나중에 차를 반납하면서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 교통법규 위반 내역과 범칙금이 기록돼 있어서,

렌터카 사무실에서 범칙금을 대신 수거해서 요르단 정부에 입금하게 돼 있다.

이걸 모르고, 눈감고 튀튀와 케이-교양 사이에서 고민한 건 돌이켜보면 코미디였다.


두번째로 찍힌 과속 단속. 제한속도 80km인데 124km로 달렸다고 써 있다.


이후로는 과속 단속 경찰관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안 찍힌 줄 알았다.

렌터카 사무실에 카드를 반납하니 찍혀 있었다.

우리는 금시초문이어서 외국인이라고 얕보는 건가 싶어 여차하면 대차게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게 아니라, 이동식 차량용 카메라라는 게 있다고 한다.

도로 한쪽에 서 있는 차량이 속도를 측정하고,

위반하면 번호판을 찍어 전산에 등록하면,

이게 나중에 렌터카를 반납할 때 뜨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단속 카메라에 찍힌 우리 차 사진을 보여줬다.

경찰관이 안 보여서 밟은 건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몬테카를로 렌터카 직원이 말을 잃은 우리에게 조언하기를,


"고속도로 한쪽에 기아차 세라토가 주차돼 있으면 무조건 감속해야 해."


그러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무조건 이동식 과속 단속을 하는 경찰 차량이라고 한다.

요르단인이 요르단을 살아가는 지혜였지만 나는 출국하는 날 이걸 알았다.

왜 이걸 입국 첫날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는지 야속했지만,

첫날 만난 직원과 마지막날 만난 직원은 다른 사람이었다.

단속 카메라에 찍힌 위도와 경도로 구글맵을 찾아보니 와디무사에서 아카바로 가는 '사막고속도로'였다. 정확히 내가 찍힌 위치의 스트리트뷰.

처음에는 이상했다.

과속 단속은 과속 운전자를 잡아내려는 게 아니라, 운전자 모두가 과속을 하지 않도록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

범칙금으로 걷는 재정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과속이 유발하는 사고를 예방해 피해를 줄이는 게 정부의 역할일 테니까.

그러면 과속 단속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 하는지 정확히 고지를 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럼에도 요르단은 이걸  하지 않는다.

운전하는 나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든 과속 단속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첫날 만났던 직원이 해준 말이 떠나려니 떠올랐다.


"속도는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으레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한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내 생각이 짧았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과속하는 게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현지인은 단속으로 겁을 주지 않더라도 어련히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

거기서 위반을 하는 내가 예외적인 대상인 것.

요르단인에 대한 평가가 너무 후한 것 아니냐고?

여기서 운전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To be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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