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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Jan 14. 2024

지구에서 겪은 화성[신혼여행은 처름]

요르단 여행이 환상적인 이유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와디럼 사막 투어.

영화 마션은 화성이 배경이다.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맷 데이먼)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우주선이었다.

이 우주선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정은

화성의 '붉은 모래의 사막'을 가로질러간다.

당연히 감독은 이 장면을 화성에서 찍은 게 아닌데도,

관객인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게 이런 착각을 유발한 감독은 최대한 화성 같아 보이는 지구를 찾고자 애썼을 터다.

그래서 고른 지역이 바로 요르단에 있는 와디럼 사막이다.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여기는 화성이 아니라 요르단 와디럼 사막이다.

와디럼에 간 건 요르단 여행 닷새째였다.

페트라에서 2박 3일을 묵은 우리는 아침에 서둘러 짐을 꾸려 와디럼으로 떠났다.

와디럼에서 아침 9시에 시작해 다음날 9시에 마치는 사막 투어에 합류하려면 여유 부릴 새가 없었다.

투어는 우리만 하는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라서,

늦은 사람은 두고 투어를 출발할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었다.

이동 거리는 차로 한 시간 남짓이었다.

가는 길에 생각했다.

'암만과 사해, 페트라를 봤으면 요르단은 다 본 게 아닌가.'

사실 사막이라야 이동하면서 실컷 보았다.

그저 눈을 뜨면 보이는 게 사막인데 굳이 사막을 보러 가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정말 같잖은 생각이었다.

내가 추억하는 요르단 여행이 환상적인 까닭에서 최대 지분을 차지하는 게 와디럼에서 한 1박 2일 사막투어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투어를 신청한 업체명은 '와디럼 노매드'.

십여분 넉넉하게 도착하니 사장님이 나와서 웰컴 티(홍차)를 내어줬다.

우리가 떠나려면 간밤에 갔던 투어 차량이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차량이 올 때까지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시작했는데,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라서 요르단에 왔다는 사장님(여성)은 이야기에 고픈 듯이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선 오늘 투어는 우리 둘이 전부라고 했다.

원래 이 시기(10월)는 최대 성수기라서 예일고 여덟 명이 한 팀이 돼 여행을 떠나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성수기가 무색하게 우리 둘 뿐인 이유는,

바로 옆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벌인 전쟁 여파 때문이다.

관광객 대부분이 유럽인인데, 이들이 전쟁이 터지자 무서워서 요르단 관광을 꺼린 것이다.

그래서 올해 장사는 망쳤다고 사장은 울상이었다.

우리가 겁이 없어서 요르단에 온 건 아니었는데,

유럽인들은 무서워서 피해 갔다고 하니,

우리는 약간 무모하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닌가도 싶었다.


사장님은 스몰 토크의 여왕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우리 집에서 투어하고 돌아간 뒤로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처음 다녀간 이가 네이버에 후기를 올린 결과였다.

새삼스럽지만, 한국인 상당수는 녹색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부릉 소리가 들리더니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얘기가 신변잡기로 빠져들어가면서 슬슬 듣는 게 피곤해지던 차였다.

때마침 전날 떠났던 투어 차량이 돌아온 것이다.

차량에서 젊은 남녀 둘이 내렸다.

어제 투어도 둘만 떠난 걸 보니, 아까 사장님이 한 말이 엄살은 아니었다.

돌아온 둘의 얼굴은 대단히 추레해 보였다.

물어보니 간밤에 그들은 동굴에서 잤다고 했다.


뜬금 왜 동굴이냐고?

투어 업체가 제공하는 잠자리는 세 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건 숙소다.

간이 천막에 침대가 있고, 전기가 들어오며, 분리된 공간에 상하수도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동굴이다.

대단한 동굴이라기보다 돌산 한쪽 움푹 들어간 공간을 빌어서

위로는 하늘을 가리고 좌우앞뒤로는 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정도이다.

베두인이 동굴에서 잠을 자니, 관광객도 체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베두인이 동굴에서 먹고 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막이다.

하늘이 열리고 사방이 뚫린 공간에서 잠자기.

원초적으로 사막을 느끼는 정도로는

숙소 <동굴<<<<<<<<<<<<<<<<<<<<<<<<<<<<<<<<<<<<<<<<<<<<<<<<사막

이 될 것 같다.

내일 이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동굴에서 사막을 나고 온 저 커플 표정과 어떻게 다를까.

앞으로 여정을 상상하면서 투어를 맡은 도요타 픽업트럭의 뒷칸에 몸을 실었다.


우리 여행을 하룻 동안 책임질 가이드는 20대 청년 무함마드였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 영어가 유창하고,

유창한 영어로 관광객을 웃기는 국경을 초월하는 유머 감각을 갖췄으며,

어찌나 웃기는지 사막(비포장 도로)을 운전하면서 요르단 고속도로 제한속도(80km)를 우습게 초과해 버리는,

이슬람 창시자와 동명이인인 이였다.

앞으로 이 무함마드가 차를 몰고서 와디럼 사막 곳곳에 정차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변을 거닐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기다가 다시 차에 타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식으로 투어는 진행될 터다.

샘터에서 내려다본 광경. 사막이 한눈에 보인다.

처음 내려준 곳은 샘터였다.

업체에서 출발한 지 10분 정도 지나서 있는,

와디럼 사막 초입에 있는 포인트이다.

돌산을 올라서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막을 왜 보러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는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잘 나왔다.

정상에는 작은 샘이 있다.

오아시스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고, 수질도 식수로 쓰기 어려워 보였다.

다시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걸린 코스였다.

왼쪽 사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이들이 오를 만큼 둔덕은 어렵지 않다. 오른쪽 사진 아래 검은 점 두 개는 지나가는 낙타이다.

샘터 다음으로 간 곳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랜스'를 촬영한 배경이 된 둔덕이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 탄생한 이곳은

붉은 모래사막 언덕이 있고 언덕 위로는 약간 힘을 들이면 오를 있는 돌산이 있다.

다른 업체를 끼고 온 관광객 중에는 흰색 드레스를 맞춰 입고 와서 사진을 찍던 여성 넷의 무리가 있었는데,

이런 복장을 하고서도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돌산에 오르면 와디럼 사막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우리는 한동안 여기 머물렀다.

나중에 이 광경을 사진으로만 기억하기는 싫었다.

오감이 남긴 기록이 기억돼 몸에 새겨지도록 여유를 부렸다.

사막에서 점심을 챙겨주는 무함마드.

평원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어느 절벽 밑 응달이었다.

점심시간이었다.

무함마드가 짐칸에 실어뒀던 식자재로 간단하게 밥상을 차렸다.

넓게 펴 구운 빵(난과 비슷)과 아마도 감자를 삶아 으깬 것(탄수화물)을 주식으로,

오트밀과 콩 따위를 삶아서 으깬 것(단백질과 지방)과,

오이 따위 채소(무기질)가 곁들여졌다.

토마토 수프도 있었다.

고기반찬이 없었지만 맛있었다.

참고로 우리는 사막 한복판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두려워서 

사전에 2리터 들이 생수 두 병을 챙겨갔는데,

무함마드는 짐칸에 6개 묶음짜리 생수를 넉넉하게 싣고 다녔다.

목이 말라서 힘든 상황이 오지는 않을 거 같았다.

저마다 소원을 빌어 쌓아올린 돌탑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삼십 분여 동안 낮잠을 잤다.

사막을 여행하는 건 체력 싸움이다.

발이 모래에 빠져서 걷는 게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때 낮잠은 참 다디달았다.

깨어보니 무함마드는 우리 옆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방해가 될 것이 저어 돼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후 투어는 계속됐다.

여기는 바람이 빚은 버섯 모양의 자연석이 유명한 곳이네,

여기는 고대인이 남긴 벽화와 문자가 있는 곳이네,

여기는...

사실 투어는 포인트마다 머무는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다.

해보니까 계획한 포인트를 해가 질 때까지 거치는 것이고,

해가 지면 거기까지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 안에 어딘가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서 순간을 즐기면 된다.

그러다 다다른 사막 한가운데 만남의 장소.

여기는 기념품이나 스카프 따위 잡화를 팔고, 시원한 음료도 팔았다.

사막을 여행하는 이들 너도 나도 모여서 다리 쉼을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모여든 관광객과 현지인은 거기 한쪽 어딘가 배구 네트를 치고서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무덥고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서 격하고 점프를 해야 하는 배구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우리 가이드 무함마드도 껴 있었다.

무함마드는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기도 했거니와 경기를 즐기고 있었기에 우리가 나서서 이제 다른 코스로 이동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배구를 마치고 돌아온 무함마드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창문을 열고 모래바람을 쐬는 무함마드는 다음에 내렸을 때 땀이 모두 말라 있었다.

이제 석양을 볼 차례였다.

무함마드는 불을 지펴서 물을 끓이고 거기에 홍차를 우려서 줬다.

홍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멍하게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해가 지기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숙식할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상하수도를 빌려서 개인위생을 점검했다.

오른쪽 사진에서 배구하는 무함마드. 흰바지에 고동색 상의가 그친구다. 왼쪽 사진은 만남의광장에서 만난 베두인 꼬마 둘. 통신이 안 터지는데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녁을 먹을 커다란 천막으로 들어가니 전구가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이미 밖은 어두워서 등이 없이는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의자와 탁자가 있는 식탁도 놓여 있다.

편했다.

거기에 뷔페식으로 음식이 깔렸는데,

점심에 먹은 것과 같은 메뉴에 닭고기볶음밥이 곁들여 나왔다.

이게 참으로 맛있어서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사막에서 먹는 사과는 참 달았다.

아늑했던 저녁 식사 장소.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무함마드가 모닥불을 지펴두었다.

나와 처 무함마드는 거기에 둘러앉았다.

거기서 나는 면세점에서 산 잭다니엘을 꺼냈다.

사막에서 마시려고 일부러 가져간 것이었다.

별을 안주 삼아서 술을 마시는데, 별이 너무 많아서 술이 모자랄 판이었다.

별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으니까.

무함마드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는 걸 그제야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북 어디냐고 한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했더니 자기는 북한 김정은과 전화통화하는 사이란다.

우리가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자기가 김정은의 허락을 얻을 테니 북한에 한번 같이 가자고 했다.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한순간 나를 옭아매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정은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는 여기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서 그럴 수 없다고 하더니, 비로소 장난이라고 한다.

이런 실없는 얘기를 장난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여서 가능한가 보다 싶다.

자기가 가이드 일을 여러 해 했는데 너희들처럼 둘이 이곳에 지내는 걸 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정말로 특별한 허니문이라고 축복해주었다.

여기서 잤다.

약간 쌀쌀해지는데, 모닥불을 보고 있노라니 잠이 밀려왔다.

무함마드는 우리를 데리고 베이스캠프 바깥으로 갔다.

수 백 미터를 걸었을까.

사막 위에 깔아 둔 매트리스와 그 위에 침낭이 어렴풋이 보인다.

여기가 우리 잠자리라고 한다.

무함마드는 가버렸다.

나와 처는 누워서 하늘을 봤다.

올려다보지 않은 밤하늘을 보는 것은 처음 같았다.

그 광경은 잊히지가 않을 것이다.

노숙하면서 갤럭시플립5로 찍은 와디럼 밤하늘. 긴 띠는 유성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비행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일어나 야생에 몸을 맡기려고 하는데

사방이 어둡기도 하고 지리도 어두워서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잠귀가 어두운 처이지만 너무 가까운 데에서는 기척을 느낄까 우려돼

적정한 거리를 계산하느라 깊게 고심한 것 말고는.

일어나 보니 매트리스와 침낭은 이슬을 맞아 축축했지만, 아늑한 잠자리였다.

조식을 먹고 와디럼 노매드로 돌아왔다.

작별이 아쉬운 우리와 달리 무함마드는 무심하게 떠나버렸다.

통신이 잡히는 지역으로 돌아오자 스마트폰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룻동안 밀린 알림이 밀려서 오는 것이다.

가족들 연락이 대부분이었다.

전쟁이 난 지역으로 갔는데 하루 동안 연락이 안 되니 걱정이 컸던 것이다.

사전에 미리 얘기를 해뒀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이런 무심한 부부를 보았나.

자신이 김정은의 친구라고 주장하던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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