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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Jan 08. 2024

떨어진 웃음을 주워준 꼬마[신혼여행은 처음]

장난을 다큐로 받아 이상한 사람이 된 내게 웃음 펀치를 날린 소년

그러니까 ‘나는 돈이 궁하지 않으니 너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빌드업’을 했던 그 녀석과 내가 ‘라이어’라고 했던 소년이 야박하게 느껴진 이유는 아마도 전날 만난 또 다른 소년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호객꾼 소년 얘기다.


나는 페트라를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다.

페트라 호객꾼은 내게 이 느긋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오면 거절해야 했고, 

언젠가부터는 말을 걸어올 것 같아서 피하게 되고, 

이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약간 스트레스였다. 

사실 여행에서 방해받지 않으려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페트라가 우리 집 안방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XX.'

시크 사이로 보이는 알카즈네. 틈으로 나아갈수록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호객은 페트라 입구에서부터 시작한다.

애쓸 거 없이 그냥 가만히 걷다 보면

어떤 이가 다가와 말한다.

'페트라 입장권을 보여주면 시크까지 말을 공짜로 태워줄게'

시크는 알카즈네로 들어서는 협곡이다. 

입구에서 거기까지 내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거기까지는 거리가 상당해서 실제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관광객이 다수다.

그런데 딱 보아도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말 타는 게 무료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굳이 진짜 공짜인지를, 나아가서는 왜 공짜인지를 묻지 않고 지나쳤다.

호객꾼은 입장권을 보면 공짜가 쓰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입장권 어디에도 이런 얘기는 쓰여 있지 않다.

도대체 이걸로 어떻게 말아내는 것인지, 궁금해서 부러 걸려들어볼까도 싶다가 말았다.

알카즈네로 향하는 시크 중간에서 관광객이 다리 쉼을 하고 있다. 잘 안 보이지만 전기카트가 관광객 틈을 질주하고 있다.

시크를 지나서 알카즈네까지는 또다시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이 구간에서는 딱히 호객행위가 없다. 

말이 다니지 않고, 잡화상도 없다. 

대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전기차를 피해야 한다.

검표소에서 알카즈네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차다.

골프장 카트를 떠올리면 쉽다.

한 번에 많게는 여덟 명도 탄다.

편도 한 시간가량, 왕복 두 시간 정도를 걸어서 오가는 게 불편한 노약자이거나

시간을 아껴서 목적지를 오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용하면 제격이겠다 싶다.


알카즈네에 가까워지면 호객이 시작된다. 

내 처에게 말했던 '저 위'에서 사진을 찍으라는 게 주를 이룬다.

협곡 위로 오르면 알카즈네가 내려다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 길을 베두인이 관리하면서 오가는 관광객에게 돈을 걷는다. 

우리는 사양했다.

드디어 페트라를 상징하는 알카즈네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호객과의 전쟁이다. 

우리끼리 사진을 찍고 있으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온다. 

앞서 말한, 호객꾼 소년과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내가 처의 사진을 찍고 있으니 같이 서보라고 한다.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한다.

일고여덟이나 돼 보였다. 

내 핸드폰을 들고 튀어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탁했다.

그러는 새 소년 뒤로 낙타가 걸어왔다.

소년은 낙타 등에 타서 사진을 찍어 보라고 했다. 

추억이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이건 공짜가 아니다..

낙타 등에 타고, 사진을 찍고, 등에서 내렸더니

10디나르(2만 원)를 달라고 한다.

처도 타고 나도 탔으니 4만원이다

4만 원을 쓰는 데는 1분이면 족했다.

'신혼여행이잖아.'

기분 좋-지는 않지만 좋-게 냈다. 

알카즈네 앞에 모인 관광객들. 과장되게 말하면 관광객 수많은 호객꾼이 있다. 수많은 낙타가 수많은 똥을 싸면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돈을 내고 나니 난데없이 낙타 주인이라는 베두인이 나타났다. 

그 베두인은 우리가 방금 탄 낙타가 자기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자기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소년은 영업을 하는 것뿐이란다. 

이건 마치, 현대렌터카를 빌려 타고서 돈을 지불했더니 갑자기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이 나타나서 "나한테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소년에게서 돈을 받으라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돈을 달라고 한다.

사내의 얼굴이 험악해졌고, 나의 표정은 썩어갔다.

험악한 표정의 사내가 갑자기 웃는다.

그러더니 "조크"라고 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게 더 빡친 건 장난을 다큐로 받아들이고 화를 낸 나만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이대로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분할만큼 기분 상했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이쯤에서 참기로 한 것은 두고두고 분하다. 

돌이켜 보아도 당시 상황은 "조크"가 아니었다.

우리가 떨어뜨린 웃음을 주워준 소년. 알카즈네에 도착한 우리에게 낙타 사진을 영업하고, 우리의 부탁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뒤로 보이는 음각 건축물이 페트라의 상징 알카즈네.

호객꾼 소년은 이 상황에서도 영업을 그치지 않았다. 

승강이가 끝나자 자기랑 같이 협곡 꼭대기로 올라가자고 한다. 

도저히 귀엽다고 봐줄 만큼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내일 오면 올라가겠다고 하고 사양했다. 

내일도 페트라를 올 예정이지만, 

소년과 위에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상황을 무마하려고 거짓말했는데 내일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 귀찮아질까 봐서 괜한 거짓말을 했나 싶다. 

바로 이게 내가 호객이 싫은 이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이 소년을 다시 만난 건 다음날이다.

그러니까 '나는 돈이 궁하지 않으니 너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빌드업'을 했던 그 녀석과 내가 '라이어'라고 했던 동키를 끄는 소년을 만난 직후였다. 

기분이 상한 채 집으로 돌아가며 귀찮으니 소년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알카즈네 길목, 소년이 저기 보인다.

내게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협곡 꼭대기에 가면 기막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친구는 전날 본 나를 잊은 투였다.

그래서 나는 어제 빈말로 한 약속을 어기는 스트레스를 덜어내면서, 괜찮다고 물리쳤다.

그러지 말고 올라가 보자고 하는데, 무시하다시피 지나쳐 가던 길을 갔다. 

그러자 뒤에서 녀석이 소리쳤다. 


"너네 뭐 떨어뜨렸어!"(You drop something.)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얘기에 반응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소년이 땅에 떨어진 걸 주워주면서 말했다.


"너의 웃음이야."(Your smile)


하.

우리는 그걸 듣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요르단인 대부분은 호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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