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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Jan 05. 2024

아들뻘 녀석과 싸우다[신혼여행은 처음]

알카즈네를 지나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나귀를 탔다가 속이 타들어갔다.

알카즈네는 페트라를 상징하지만,

페트라다 알카즈네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페트라를 '입구->시크->알카즈네->수도원' 여정으로 둘러봤는데,

알카즈네를 지나 수도원으로 가는 길도 호객꾼과의 전쟁이었다.

앞서 호객이 '사진'과 '절벽'으로 요약됐다면

이제부터는 '나귀'가 등장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수도원까지 걸어가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데, 동키(나귀)를 타고 가면 갔다가 돌아오는 데 한 시간이면 된다는 것이다.

편도도 가능하고, 왕복으로 이용하면 '스페셜 프라이스'를 적용해준다고 한다. 

우리가 본 지 얼마나 됐다고 특별 가격을 주겠다고 한다. 

의심 많은 나는 이런 걸 본능적으로 사기라고 느끼고 멀리했다.

'노 땡큐'로 물리치고 나아간다고 끝이 아니다.

바로 앞에서 먼저 번과 같은 이가 나타나 비슷한 제안을 한다. 

사실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 계속 똑같은 베두인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나는 제자리에서 걸음 하는 느낌으로

베두인이 다가오면 자동으로 몸이 뒷걸음쳐졌다.

자석 엔극과 엔극으로 서로 밀어내는 듯이.

등에 태울 관광객을 기다리는 요르단 동키들.

잠깐.

호객이 얼마나 대수인가 싶지만,

이건 점심시간에 여의도 거리를 걸으면서 전단지를 든 상대를 마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단지는 받아 들거나 그러고 싶지 않으면 미안한 척하며 눈을 피하거나 몸을 빼면 그만이다.

페트라는 다르다. 

내가 사양하고 가면, 이 호객꾼은 동키를 타고 따라온다. 

동키가 나보다 먼저 지칠 일은 없다는 게 관건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피를 흘리는 누우를 하루종일 쫓아가 사냥하는 하이에나를 그린 내셔널그래픽채널 다큐가 떠올랐다. 

한창 학교 다닐 나이에 우리 가이드를 맡은 꼬마(빨간 옷)의 손에 이끌려 가는 나와 처.

이렇게 대치하기를 수차례.

결국 동키 등에 타고서 나를 따라오던 녀석(남자로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을 올려다보았다. 

한 열 대여서일곱이나 돼 보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안녕하세요'가 자동으로 나왔다. 

선수 같았다.

그때부터 십여분을 걸으면서 녀석은 신변잡기 얘기를 했다. 

자기는 나귀와 염소, 닭을 키우면서 산다는 둥 이 정도면 일대에서 제법 부자 축에 든다는 둥 그래서 집착해서 돈을 버는 형편은 아니라는 둥. 

진짜 선수였다.

'나는 돈이 궁하지 않으니 너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페트라에서 방목하는 염소 떼. 사막의 대지에서 대체 무엇을 뜯어먹고 사는지 의문이다.

그러고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녀석의 동키 등에 올라 있었다. 

그 옆에 같은 처지의 내 처가 보였다.

수도원까지 편도로 가는 데에 '특별 가격'을 적용받아서 둘이 합쳐 30디나르를 내기로 했다.

한국 돈으로 대충 6만 원이다.

돈을 주려고 하자 후불이라고 했다. 

나는 자기의 "뿌렌드"(친구)이니 믿겠다고 한다.

믿음이 확 갔다.

사실상 모든 베두인은 나를 "뿌렌드"라고 불렀는데,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렇게 "뿌렌드"가 됐다.

녀석 뿌렌드는 자신의 동키 두 마리의 등에 탄 우리를 수도원까지 안내할 가이드를 붙여줬다.

열 살 남짓이나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페트라에서는 일하는 아동을 쉽게 만난다.

학교에 갈 나이, 갈 시간인데 호객을 하거나 가이드를 하거나 물건을 판다.

학교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건지,

돈을 벌어야 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이었으면 불법(15세 미만은 일하지 못함)이다.

우리는 아동 노동의 현장에서 부당함을 분연히 주장하기는,

페트라의 생존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여하한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고 우리 길 안내를 맡은 아동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지면서 몸을 맡겼다.

저기 절벽에 조각된 게 집이다. 저기서 예로부터 베두인이 살았고, 지금도 상당수는 저기서 산다고 한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약간의 평지를 지나 돌산이 나타나기까지 그랬다.

산에 오르면서부터 나를 태운 동키가 경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동키는 자신을 부리고 가는 아동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움직였다.

등산로를 이탈하더니 급기야 비탈로 내려가기까지 했다. 

허벅지를 죄어 안장을 힘주어 잡지 않았더라면 낙동(낙마)할 뻔했다. 

산비탈 협로를 이런 식으로 오르다 보니 무서웠다.

뒤를 돌아보니 처는 이미 실신 직전이다. 

결국 내려서 걸어갈 테니 나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우리의 신혼여행이 뉴스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처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나의 동키를 타고서 아동에 손에 이끌려 꾸역꾸역 산을 올랐다.


"타임 이즈 오버." (Time is over.)


얼마쯤 갔을까. 

녀석은 약속한 30분이 지났으니 내리라고 했다.

우리의 계약은 수도원까지 가는 게 아니라 30분 이내에 수도원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녀석이 '동키를 타면 30분 안에 수도원에 갈 수 있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억울한 나는 걔와 논쟁했다. 

'30분 안에 수도원에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랬는데 너희가 지체해서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라고 했다.

아까 동키가 등산로를 벗어나면서 허비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체한 적이 없었다. 

너의 고용인(녀석)이 가진 동키가 태업을 해서 그런 것이었다. 

수도원 가는 도중 계약이 끝나서 동키에서 내려야 했다. 내리기 직전에 얘한테 사진을 부탁해서 찍었다. 동키 말 안 듣게 생겼다!!!!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냥 말았다. 

아들뻘 되는 녀석이랑 되지도 않는 영어로 뭐 하는 짓인지 현타가 왔다.

'여기서 걸어가면 10분이면 수도원에 간다'고 하기도 했으니 그만했다. 

알았다고 하고 후불의 비용을 소년에게 줬다.

아이는 '팁을 달라'고 했다. 

팁은 호의인데, 나는 호의를 강요받았다.

엉겁결에 가지고 있던 10디나르를 주었다. 

가진 돈에서 그게 단위가 제일 낮은 것이었다.

한국돈 2만 원이었다.


뒤따라오던 처는 금방 나와 합류했다. 

나는 지쳐 보이는 처에게 십여 분만 가면 수도원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고서 한 시간 가까이를 걸어 수도원에 도착했다. 

늑장 부린 게 아니라 소년이 거짓말한 것이었다. 

화가 났다. 

애초 동키를 타고 30분 만에 수도원에 갈 수 없었고, 

조련이 서투른 애를 붙여서 위험할 뻔했고, 

나를 내려준 곳에서 십여분이 남은 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팁까지 받아갔다.

도착한 수도원의 모습. 알카즈네보다 접근성이 약간 떨어져 대중성은 덜해 보였지만, 마주하고서 장관에 입이 벌어진다.

내려오는 길에 소년을 만났다. 

또 다른 고객(호객)을 등에 태우고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내가 소년에게 말했다.


"유 아 라이어"


자라는 애한테 너무 심한 말인가 싶었는데, 소년의 대답은 간단했다.


"노"


그러고는 가던 길을 갔다. 

머쓱했다. 

내려오는 길에 소년의 고용인, 그러니까 '나는 돈이 궁하지 않으니 너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빌드업'을 했던 그 녀석을 만났다. 

그와 눈을 마주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비즈니스 이즈 트러스트"라고 했는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비즈니스 이지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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