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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Jan 02. 2024

요르단인은 호의적이다. 대부분은.[신혼여행은 처음]

호의는 주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을, 관광지 페트라에서 느꼈다.

한밤 중에 짝과 길이 엇갈렸다. 

야간개장한 페트라 알카즈네에서였다. 

방금까지 옆에 있었는데 잠시 한눈 판 새 사라졌다. 

수백명을 헤아리는 인파 한가운데에서 서로는 혼자가 됐다. 

전화해서 찾으려고 했는데 닿지 않는다. 

사람이 한데 모이면 이러곤 하던데, 애먼 통신사 탓을 할 새가 없었다. 

이러기를 수 분이 흐르고 드디어 전화가 연결됐다. 

찾고보니 불과 십수미터 떨어진 곳에 짝이 있었다.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길이 엇갈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야간개장한 페트라의 알카즈네 모습. 왼쪽 사진의 페트라에 형형색색 불을 켜서 오른쪽처럼 만든다. 이걸 협곡 위에서 보면 절경이라고 한다.
내가 너 저 위로 데려가줄까?


우리가 잠시 떨어진 새 거기 있는 베두인이 내 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위가 어디냐면, 알카즈네를 둘러싼 좁은 협곡의 꼭데기 어디쯤이다.

알카즈네는 자체로서 장관이지만,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도 일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저기에서 찍은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꾸민다.

그런데 인스타 맛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현지인 베두인이 관리한다. 

법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서울 남산돈가스 거리의 상인들이 자기네 가게 앞 도로에 자기네 손님이 아닌 이가 주차하면 몰아내고 거액의 주차비를 받을 것처럼 얘기하면서, 마치 자기 땅인냥 여기며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자기네 주차장으로 쓰는 것과 비슷한 듯이 보였다.

내가 남산돈가스를 가지 않은 건 이런 이유가 큰데, 같은 이유에서 나는 같은 이유에서 협곡으로 오르는 걸 거부하기로 했다.

관광객이 여기를 거쳐 저 위로 오르려면 베두인에게 돈을 내야 하는 탓이다.

거기서 베두인에게 통행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를 따지는 건 나를 미친놈으로 만드는 일 같았기에,

그냥 말기로 했다.

알카즈네에서 시크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 저 비좁은 틈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그길 위로 보이는 협곡의 꼭대기가 베두인이 호객하는 뷰맛집.

페트라에서 '저 위'는 '돈'을 의미했다.

이 돈벌이는 밤에도 끊이지 않는다.

매일 개장하는 페트라 야간 관람에 수많은 인파가 모이니 호객도 예외일 리 없다.

그런데 밤에는 '저 위'가 가지는 의미가 '돈'뿐 만이 아닐 수도 있다.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기가 그지없는데 별도로 안전대가 쳐 있지 않아서 위험해 보였다.

결정적으로 오르고 내려가는 길은 베두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만약 베두인이 내려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지어낸 얘기는 아니다.

요르단에 가기 전에 읽은 여행기에서, 글쓴이 한국인 여성 관광객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야간에 알카즈네에서 베두인을 따라 협곡 꼭대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기까지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올라갔더니 베두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내려가려고 해도 길을 안내해주지 않아서,

다른 현지인의 도움을 요청해 겨우 내려왔다는 게 대략 내용이다.

야간개장 페트라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이 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처는 앞서 한국인 여성 관광객이 겪은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주변에는 수백, 아마도 천여명을 헤아리는 인파가 있었다. 

여차하면 주변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그때 자기 곁에 내가 없었다는 것이, 

이렇게 된 게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과 무관하게, 

그냥 그 상황 자체가 불편했다. 

그저 나는 처의 곁에 있어야 했다. 

새삼스럽지만 이제 나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제껐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숙소로 걸어서 돌아오는 한 시간 가까이 동안 처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숙소로 돌아와서 찍은 와디무사의 환상적인 야경. 비경이다.(사용하는 휴대폰 갤럭시로 노출을 최대한으로 해서 찍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베두인의 제안이 호의였을지 모른다.

야밤에 혼자인 동양인 여성을 자기만 알고 있는 길을 거쳐서 그럴싸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데려가주려는 호의.

그런데 호의는 베푸는 쪽이 주는 게 아니라 받는 이가 느끼는 것이다. 

상대가 불편하면 호의는 악의가 된다.

방식이 문제이고 상황이 관건이다.

그렇기에 그 밤에 그 베두인의 행동을 호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요르단인 대부분이 호의적인 것이만, 

요르단인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설령 호의적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는 걸 요르단 와디무사 페트라에서 느꼈다. 

나는 얼굴도 보지 못한 정체모를 베두인도 그렇지만,

이튿날 나를 나귀 등에 태운 그 베두인 녀석과 만남이 그랬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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