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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Dec 30. 2023

사막 한복판, 낯선 사내들이 다가왔다[신혼여행은 처음]

도와주려고 다가온 이들을 경계했다. 애초 주먹에 힘을 준 건 부질없었데도

낯선 베두인 남성 셋이 다가온 건 사막 한복판 고속도로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차로 네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길에 차가 없다 보니 긴장이 풀린 채 운전하게 되더라.

거칠 것 없는 풍광?

이것도 계속 보면 질린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지쳤다.

쉬어갈 겸 차를 세웠다.

휴게소가 아니라 그냥 사막 한가운데다.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은 우리 둘뿐이다.

굳은 몸을 풀어주며 질릴 만큼 거칠 것 없는 풍광에 다시금 감탄했다.

그러고서 트렁크를 열어 캐리어를 뒤졌다.

가는 길에 먹을 간식을 캐리어에 넣어둔 바보 같은 나를 탓하면서 말이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쉬면서 찍은 사막. 사막은 물리적으로 지평선이 아니지만 시각적으로는 시선이 멈출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와중에 앞서처럼 낯선 이들이 탄 차량이 우리 뒤로 다가와 서서히 정차한 것이다.

트렁크에서 뒤돌아보니 은빛 승합차에는 남성 셋이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 셋과 나 그리고 처까지 다섯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나는 신혼여행이 뉴스가 되는 것이 싫었기에 자연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들이 탄 차량의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남성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유 니드 헬프?"


도움이 필요하냐고 한다.

올 게 온 모양이다 싶었는데, 너 괜찮냐는 물음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긴 보이는 건 노랗거나 붉은 돌과 모래뿐이 사막 한가운데,

바깥 기온은 영상 30도를 넘는 도로 한복판에서,

갓길에 세운 차량이 트렁크를 열고 있으니,

영락없이 차가 말썽이라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듯 보였으리라.


"아임 오케이"


차창이 올라가더니 군말 없이 그들이 탄 차는 떠났다.

주먹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머쓱함을 감추려는 듯이 소리 없이.

사막에서는 사람보다 낙타를 만나는 게 더 쉬운 모양이다. 아카바에서 암맘으로 가는 길에 찍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차가 고장 나면 비상 점멸등을 켜고 트렁크를 열어두는 게 대처 요령이다.

한국과 다른 건, 길을 가다가 이런 이들을 마주하면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는지일 것이다.

누가 무정하고, 누가 다정하다는 걸 따지려는 게 아니다.

한국은 차가 서면 보험사 직원이 와서 도와준다.

엔간히 외진 데라고 하더라도 보험사는 찾아간다.

요르단에서 이런 상황에 처한 나를 상상해 보면,

보험사(여기서는 경찰이 담당한다고 설명을 들었다.) 도움을 받는다손 하더라도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를 언제쯤 찾아올까 싶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이가 느끼는 공간과 시간의 공백을,

이웃한 이가 메워주는 게 여기를 살아가는 법이 됐나 보다.

도움받은 상대가 언젠가 나를 도우리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나니, 그간 요르단을 도로를 운전하면서 만난 수많은 히치하이킹하던 이들이 떠올랐다.

그저 대중교통이 열악해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누군가는 차를 세웠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는 곳마다 차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들 리가 없지 않은가.

나아가서 보면 차를 세웠다는 건 손을 흔드는 이들을 태워도 된다는 의미였나 보다.

이들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나는 차를 한 번도 세우지 않았다.

차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들던 현지인. 나는 이 사람을 빠르게 지나쳐버렸고, 결국 요르단에서 과속딱지를 두 장이에 뗐다.

사막에서 겪은 일 하나로 호들갑께나 떠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게 나타났던 그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니까 암만 교차로에서 방향을 잘못 읽고 도로를 역주행하는 바람에 극심한 교통체증을 유발한 나에게,

그 흔한 클랙션 한번 울리지 않고 유턴하라고 기꺼이 길을 터준 차들,

그러니까 암만 시내에서 호텔을 찾아 헤매던 내게 길을 안내하려고 가던 길을 거슬러 수분을 함께 걸어간 후드티 입은 담배를 좋아하던 청년,

그러니까 암만 시장에서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하고 호객행위를 하다가 한국인이라는 얘기에 갓 만든 꿀빵을 먹어보라고 건네던 상인,

그러니까 페트라를 보러 간 와디무사의 식당에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이 경기 안산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익힌 한국어를 동원해 여행 계획을 짜주었던 직원.

가만 보면 흔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내게 나타난 게 아니라, 그저 있었는데 내가 다가갔다.

일부러 호의적인 이들만 골라서 다가갔을 리가 없을 테잖은가.

요르단 사람들 착하다. 대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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