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갤럭시, 전지현의 치킨

만든 사람과 파는 사람이 외면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파는 행위의 기만

by 여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장하자 대중이 스마트폰으로 그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2025년 10월 한국을 찾은 엔비디아 창업자 잰슨 황과 동행한 자리였다. 그날 이 회장은 아이폰으로 셀카를 요청한 시민에게 "갤럭시를 가져오라"고 했고, 시민들을 향해서는 "아이폰이 왜 이렇게 많느냐"고 했다. 말하는 사람은 웃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상대가 안 웃으면 싸우자는 소리였다.


다행히도, -사실 내가 왜 재벌을 걱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민들이 웃었다. 이 회장도 웃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에 나온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2017년 기사다.) 어떤 기자가 사석에서 이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회장은 기자의 폰(LG폰)이 갤럭시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차량 트렁크에서 갤럭시를 꺼내어 선물로 줬다. 인터뷰 요청을 공손하게 물리치려고 했을 테지만, 이 회장도 자기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애쓴 게 아닌가. "아이폰이 왜 이렇게 많느냐"는 이 회장의 농담은 "갤럭시를 사달라"는 호소였던 것이다.


이 회장이랑 잰슨 황이 만난 자리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도 있었다. 정 회장이 현대차를 타지 않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랬다면 대번에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주주들에게는 해사 행위를 그만두라고 항의를 받을 일이다. 정 회장이 돈이 없어서 현대차보다 비싼 차를 안 타는 것은 아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일 터다.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슬로건을 건 샘표식품은 그래서 믿음이 갔다. 이 회사는 창업자 후손 박승복 회장이 매일 마시던 식초를 상품화했다. 비록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만드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내가 먹어도 되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갤럭시를 쓰고, 현기차를 탄다.


자기가 만든 제품을 자기가 팔려면 자기가 먼저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 앞서 내가 한 얘기는 어쩌면 하나 마나 한 얘기였을 것이다. 재벌을 칭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에서 공감했을 뿐이다. 상당 부분은 시각이 청각보다 강렬하다.


그런데 하나마나한 얘기처럼 당연한 일이 그렇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KGM(옛 쌍용자동차) 최고위 관계자는 평소에 외제차를 탄다고 하는 걸 보고 알았다. (내게 이 얘기를 해준 이가 잘못 알 수도 있고, 이후로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KGM이 SUV와 밴을 만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하물며 술담배를 만드는 회사의 일개 직원도 자기네 술담배를 하고, 타사 제품을 멀리하는 게 도리일진대, 마땅히 탈 세단이 없어서 타사 차량을 탄다는 이유가 궁색해 보였다.


그래서 배우 전지현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전지현씨 bhc` 광고를 하면서 치킨을 먹었다. 식품광고에서 모델이 식품을 먹기를 거부해서 광고주가 애를 먹는다고 하던데, 전씨는 업계 톱 모델인데도 치킨을 잘도 먹었다. 자신의 이미지보다 소비자에게 상품의 진가를 잘 전달하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업가 백종원씨도 비슷하다. 백씨는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 진라면을 먹고, 카스 맥주를 자주 마신다. 자기가 광고하는 식품이다. 백씨가 사업하면서 야로와 의혹을 지적받았지만, 적어도 상대방과 맺은 계약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상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전씨와 백씨는 프로다.


요즘은 음식 광고를 찍으면서도 음식을 먹지 않는 모델이 많다. 피자와 햄버거를 먹는 척하면서 키스를 한다. 국물이 들어 있지도 않은 라면 그릇을 들고서 공기를 마신다. 기만이다. 모델이 먹기 싫다고 했는지, 아니면 광고주가 먹지 안 않도 된다고 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먹지 않는 음식 광고를 찍고자 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전지현씨가 다른 모델보다 급이 떨어져서 치킨을 먹는 건 아니다. 이재용 회장도 마찬가지다. 만드는 사람이 쓰지 않고, 파는 사람도 쓰지 않는 것은 나도 쓰기 싫다.

작가의 이전글광화문으로 향한 침대 위 잔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