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

남편이라는 존재

by 리치블라썸

“주말에 애들이랑 뭐 할까?”


토요일 아침이었어요. 이미 일어난 두 딸의 아침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이것저것 치우느라 한창 분주한 오전이었죠. 뒤늦게 일어난 남편이 그 분주함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질문이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마음에 딱 걸리더라고요. 피곤이 겹겹이 쌓여 있던 탓이었을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평일 내내 애들 케어에 집안일까지 다 내 몫인데 주말 일정까지 내가 결정해야 해? 당신이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생각보다 말이 세게 나갔어요. 집안 공기는 차가워졌고, 잘 놀던 아이들까지 눈치를 보더군요. 그제야 ‘아, 내가 또 그랬네’ 싶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이 뭘 먹는지, 뭘 배우는지, 어떤 일정으로 하루를 채울지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결정으로 가득 찬 저의 매일이 이어집니다. 주말만큼은 그 책임에서 잠깐이라도 내려오고 싶었는데, 그 평범한 말 한마디에 쌓아둔 마음이 다 쏟아진 거였어요.


남편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당신 요즘 변했어. 예민하고...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


그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들킨 마음을 숨기려 괜히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정리했던 접시와 컵을 꺼내어 달그락 거리며 정적을 깨워보려 했습니다.


사실 밖에서의 저는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15년 차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웬만한 일에는 감정도 잘 조율하고, 누군가 실수해도 먼저 “그럴 수 있죠”라며 웃으며 말을 건넬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밖에서 저는 아마 꽤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왜 이렇게 달라질까요. 가장 편해야 할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만 이렇게 날이 서는 제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밖에서 다 쓰고 온 친절과 여유가 집에서는 바닥나 버린 걸까요.


남편의 지방 발령 이후로는 더 그랬습니다. 두 아이 케어와 집안일이 오롯이 제 몫이 됐고, 기대를 하면 꼭 서운함이 뒤따랐어요. 그래서 아예 기대를 안 하려고 애쓰다가도, 어느 순간 화라는 감정이 먼저 툭 튀어나오곤 했죠.


요즘은 그게 전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버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단단해진 게 아니라, 그저 뾰족해졌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요즘 저는 남편에게 향하던 시선을 조금 거두고 나에게로 돌려보려 합니다. 그가 채워주길 기다리던 자리를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읽고, 생각을 적어보면서 조금씩 메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아무 설명도, 역할도 없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 저를 채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의 각이 아주 조금씩은 둥글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 안이 비어 있으면 누구에게도 다정해지기 어렵다는 걸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아요. 오늘도 남편의 사소한 말에 먼저 날을 세웠고, 돌아서는 그의 등을 보며 조금 늦은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 감정들을 전부 상대방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게 되었다는 거예요.


너무 가깝기에 오히려 소홀했던 나의 태도, 그리고 날카롭게 서 있던 가시들이 이제는 조금씩 무뎌지기를 바랍니다.


남편을 향한 불평불만 대신 ​저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이해하는 쪽을 선택해 보려고요. 이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남편을 대하는 저의 온도도 언젠가는 따뜻한 계절에 닿을 것임을, 믿으면서 이 새벽, 나에게 집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