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무너진 루틴, 다시 나를 찾는 법

자책 대신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칭찬 한마디

by 리치블라썸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곳의 공기가 밀려옵니다. 2주 전, 아이와 함께 떠났던 푸꾸옥의 기억입니다. 소나시 야시장에서 맛본 달콤한 망고주스와 코코넛 아이스크림, 버터 갈릭 새우를 먹으며 아이와 함께 엄지를 치켜세우던 나의 모습. 낯선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그 사이에 섞여 들던 이국적인 공기가 선명합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건 아이의 손을 잡고 뛰어들었던 푸른 바다입니다. 밀려오는 파도가 아이의 발끝을 간질일 때마다 자지러지게 웃던 그 명랑하고 해맑은 웃음소리. 아이와 함께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시간은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선셋타운의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를 보며 저는 나지막이 다짐했습니다. 이 찬란함을 동력을 삼아, 돌아가면 다시 나의 하루를 정성껏 살아보겠다고 말이죠.

하지만 여행 후 돌아와 다시 마주한 새벽 5시의 공기는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눈이 떠지던 시간이, 오늘은 유독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돌덩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자꾸만 이불속 온기에 파묻혀 누워만 있고 싶어 졌습니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귀찮고 하기 싫을까.’

다시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향해 자책만 하고 있을 때, 여행 내내 밀려 있던 빨래 더미들을 정리하다가, 수영복 귀퉁이에서 서걱거리는 모래알 몇 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그 모래알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힘든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행복을 누렸기 때문이라고. 빨랫감 속에 숨어 들어온 이 모래알들처럼, 여행의 기억은 이미 내 일상의 틈새마다 소중하게 박혀 있다고 말이죠.

루틴이 무너진 게 아닙니다. 새로운 기억을 담기 위해 기존의 틀이 잠시 느슨해지는 ‘마음 이사’를 하는 중일뿐입니다. 축제의 불꽃이 꺼졌다고 해서 그 밤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우리 일상의 리듬도 잠시 멈췄다고 해서 아주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바닥에 떨어진 모래들을 가볍게 털어내고, 익숙한 식탁 한편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앉아 봅니다. 거창한 복구는 필요 없습니다. 딱 10분, 이 온기를 느끼며 앉아 있는 이 ‘작지만 단단한 시작’만으로도 저는 다시 저만의 길로 돌아와 커피 한 모금에 책 한 문장을 읽고, 내 온 마음을 담은 글을 씁니다.

새벽 5시의 알람을 놓쳤다고 해서 내 인생의 항로가 뒤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항해는 잠시 정박했을 뿐이고, 나는 다시 돛을 올릴 힘을 이미 내 안에 갖고 있습니다. 조금 돌아가면 어떤가요. 가다가 힘들면 좀 멈춰 쉬다가 또 다시 내 길을 걸어 나가면 됩니다.

오늘, 저는 "새벽에 일어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 너무 대견해", 라며 나에게 따뜻한 칭찬 한마디 건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