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가장 다정한 방법

죽음이 두려운 아이와 더 겁쟁이였던 엄마

by 리치블라썸

새벽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다시 꺼내 들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여섯 살 딸아이는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하곤 했거든요.


​“엄마, 나 죽어?”

“엄마도 죽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어느 날은 갑자기 죽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제 품에 안겨 한참을 서럽게 울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등을 토닥이는데 그 모습이 측은하기도, 또 한편으론 참 귀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나조차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데, 이 작고 여린 아이에게 죽음은 얼마나 큰 공포일까 생각하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제가 겨우 생각해서 내뱉은 말은


​“엄마는 안 죽어. 하린이 두고 엄마 어디 안 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지만,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걸 저도 압니다. 사실은 저 역시 죽음이 무서웠거든요. 아이의 질문은 순수했지만, 그 질문은 제 마음 깊숙한 곳의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워놓고 책장 앞에 섰습니다. 한동안 손이 가지 않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위해 꺼내든 책이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흔들리고 있던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다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어, 책장 한 귀퉁이를 조용히 접어두었습니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야... (중략)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죽음이 캄캄한 어둠이나 끝없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우리가 태어났던 그 환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지금 내 곁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이 더 선명하고 빛나 보였습니다.


​이제 하린이가 다시 묻는다면, 예전처럼 겁내지 않고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린아, 죽음은 무서운 게 아니야.

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안겼던 따뜻한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거기는 항상 따뜻하고, 아무리 뛰어놀아도 다치지 않고, 힘들어서 울 일도 없는 곳 이래.

무엇보다 엄마가 늘 곁에 있어서 하린이가 혼자가 아닌 곳이야.

엄마가 없다고 울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웃으면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이지.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도 너무 소중하단다. 앞으로도 엄마랑 많이 웃고, 많이 놀고, 서로 더 많이 사랑하자.”


​죽음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꺼낸 책과 말들이, 결국에는 나 자신 또한 조용히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와 잠든 딸의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어 봅니다.

참 아름답고 감사한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