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부르는 소리

2025.12.25

by 이연


크리스마스라고
딸이 전화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도
어디에 있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저 오늘이라는 사실만
확인하듯 전화를 했다.

우리 집 바로 옆이 교회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크리스마스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전날 행사 때
첫 번째 순서로 무대에 섰다.

“헬로, 헬로, 헬로
아이 참 반갑습니다, 아이 참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재미있는 크리스마스를—”

그다음은
가물가물하다.

50년이 훨씬 지나버린 시간들.

딸의 밝고 힘찬 목소리는
그 옛날의 나를
조용히 소환했다.

괜히 덩달아
기분이 두둥실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신바람이 난다.

“여보,
가지고 싶은 거 말해요.
사줄게요.”

“없어.
아니, 교회 갔다 와서
생각해 보고 말할게.”

우리는 다시
열두 살의 어린아이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밤새 눈은
펑펑 내렸다.

시골 마을은
이웃 마을까지
걸어서 20–30분쯤이었다.

새벽 종소리에 맞춰
어른들 뒤를 따라
캐럴을 부르며
집집마다 돌았다.

대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들은
“추운데 고맙다”며
고구마를 내어주었고,
사탕 몇 개,
계란 몇 개를
손에 쥐여주었다.

눈은 발목을 덮었고
손발은 꽁꽁 얼었지만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그 기억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나의 신앙을 이어주었고,
내 가슴을
가장 세차게
뛰게 했던 날이었다.

그 시절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긴 숨으로 답한다.

언제부턴가
그 소리는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글을 쓰면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름다웠던 지난날들의 기억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오늘의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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