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먼저 알려준 것, 그리고 작심삼일의 얼굴
2025.12.26
손발이 너무 시렸다.
그래도 하루는 시작된다.
어제는 너무 센 바람에
앞에 내어놓은 행거 세 개가 넘어졌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바람길이다.
가는 길을 막았다고
화가 난 건가 싶어
이놈의 바람, 너무하다며 투덜거렸다.
세 번째에는
끈으로 서로 어깨동무를 시켜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탕,
세 개가 우르르 엉켜 다시 넘어졌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손도 시리고, 짜증도 났다.
지나가던 학생들과
앞집 사장님이 함께 손을 보태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손끝의 시러움이
잉 하고 도망갔다.
정리하다가 문득,
아니,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걸까 싶어
행거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한쪽 나사가 헐거워져
좌우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
이 한쪽이 무너지니
튼튼한 다섯 다리가
함께 버텨주고 있었구나.
바람이 먼저 신호를 줄 때는
바람을 탓했고,
지탱하기 힘든 다리의 신음에는
어깨동무를 시켜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잠시,
숨을 쉰다.
출근을 서두르는데
라디오에서 ‘올겨울 최고 한파’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밖에는 눈이 약간 쌓여 있다.
미끄러지면 안 되지.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어제의 일이 스친다.
행거 아래를 다시 점검하고
흔들어도 본다.
배치는 두껍고 따뜻한 옷 위주로 바꾸고,
잘 버틸 수 있는 행거들끼리
어깨동무를 시켜
균형을 잡아준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손발의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 이 정도면 됐어.
안도의 숨과 함께
흐뭇한 미소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삶은 늘
이런 반복의 시간이었다.
문제가 일어나면
남편 탓에서 시작했다.
당신의 과한 술이
내 기분을 망치고,
화를 낸 것 같은 큰 목소리가
덩달아 내 언성까지 끌어올려
핑퐁처럼 받아치게 만든다고.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긴 시간의 호흡 끝에서야 알게 된다.
나는 바람길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풀어진 다리를 보지 못한 채
오직
내 손발의 시러움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꾸 되돌아오는 자리 하나쯤은 있다.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나에게 딱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일, 며칠쯤은
균형을 잘 잡는다.
날씨에 따라 배치도 열심히 살피고
이리저리 굽어본다.
그런데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거나,
비수기가 길어지거나,
성수기로 갑자기 바빠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그 마음 자리는
다른 일에 밀려
슬그머니 놓아버린다.
남편은 가끔 말한다.
여자 마음은 정말 모르겠다고.
글을 쓰다 보니
아마도
그가 느끼는 ‘모르겠음’은
나의 이런 패턴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속에서
그런 내가 보인다.
그래서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작심삼일의 흔적은
시간의 깊이와 함께
조용히 얼굴을 드러낸다.
아침의 배려로,
함께 걷는 걸음으로,
손을 잡는 일로.
발맞춰 걷기.
아침 인사,
저녁을 맞이하는 인사,
가게 문을 닫는 부지런함으로.
이제는
눈빛으로,
고개만 끄덕여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작심삼일이 오다 멈추면
나란히 선 행거들처럼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보듬고,
안고,
365일을
매년 그렇게
지탱해주고 있다.
슬그머니 놓아버린다.
어제도 넘어졌던 행거가
누군가의 배려로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 자리를 다시 지키는 것처럼,
나도
여전한 하루를 조용히 지켜내며
글쓰기라는 벗을 만나
작심삼일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