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 마지막

확실치는 않아도, 어렴풋이 알 것

by 이연


2025.12.30

나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침의 시작은 여전히 말씀 묵상으로 열리지만, 그 뒤에 하루의 매출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매장 문을 열고 시작하는 일의 순서도 달라졌다. 컴퓨터를 켜는 일보다 먼저, 너와의 만남이 있다. 흩어져 버릴 것 같아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자리에 앉힌다.

잠시 스쳐 가는 하루일지라도 오늘은 너와 함께 숨을 쉬며 시작하자고, 손이 나를 이끈다. 지금 이 시간도 마찬가지다. 손이 이끄는 대로 커다란 몸이 천천히 움직인다. 좋아하는 것들이 더는 흩어지지 않는 하루를 시작하자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꿈을 드러냈다.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었던 꿈이었다. 가장이라는 말이 너무 무거워, 그 어색함이 오히려 마음을 다독이는 잔잔한 웃음이 되었던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계속 써왔다. 스쳐 가는 한 사람일 뿐인데도 깊이 공감해 주는 마음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너무 소중해서 조심스러웠던 걸까.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꿈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꿈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말해본다.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눌려 지내던 시간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써왔다.
그러니 이건 시작이 아니라,
비로소 알아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확실치는 않아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조금은 보인다.
다만 새싹이 나 자라듯,
나의 꿈도 그렇게 자라날 것이라 믿어본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도
정성을 들여 가꾸다 보면
어느 날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쓰지 않는 법, 남겨두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근검절약은 선택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되고 있었다. 나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을 먼저 두는 데 너무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책임감으로 버텼던 시간은 길었다. 너무 길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작심삼일의 하루하루가 나 대신 버텨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날들 속에서, 조급함이라는 친구가 늘 함께 걸어왔다는 것도 이제야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마음이 먼저 내려놓아도 될 것들의 이름을 알아본다.

그래도 이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한 장의 책장을 넘기듯 시간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새 노트를 준비한다. ‘연말’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또렷이 불러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았던 날들을 지나오느라 보내는 것과 시작하는 것의 의미를 곱씹을 틈도 없이 살아왔다는 걸 이제야 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멈춰 서서 묻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한 해를 잘 건너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정답보다 방향이 먼저인 시간이다.

이 장을 덮는다.
비워두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은 채.
다음 페이지는
이미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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