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하루를 먼저 살아보며
나는 60대 후반의 여자다.
요즘은 하루를 시작할 때
앞날을 계산하기보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얼마나 더 오를 수 있을지보다
어디까지 나로서 머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군대가 병력 부족으로
50·60대 시니어를 경계병으로 검토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도
그랬다.
처음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지나치려 했다.
군대는 늘 젊은 사람들의 세계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군대에서까지 나이를 고민해야 하는 사회라니.
반갑다기보다
조금 쓸쓸했다.
나는 아직 걸을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일을 해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그런데 사회는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배려인지,
조용한 퇴장 권유인지
가끔은 분간이 어렵다.
시니어 경계병이라는 말이
그래서 환영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선택지가 줄어든 끝에서
다시 불린 이름 같았기 때문이다.
쓸모를 증명해야만
자리가 생기는 나이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나이를 말할 때
체력을 먼저 이야기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거나
변화에 둔감해진다고도 한다.
맞다.
젊을 때와 같지는 않다.
하지만 대신
시간을 지키는 법을 알고,
규칙을 어기는 이유보다
지켜야 하는 이유를 더 잘 안다.
경계라는 말이
그래서 이해가 되었다.
싸우는 일이 아니라
지키는 일이라면,
젊음만이 유일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내 삶에 걸맞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 깊이 남아 있을까.
아마도
걸맞게 살아야 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버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시간,
나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태도를 지켜야 했던 순간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를 계산하는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내려오고 싶지도 않다.
이 사회의 한 부분으로,
크지 않아도
의미 있는 한 조각으로
내 삶에 걸맞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은
앞도 뒤도 막혀
걷는 것조차 버거운 자리이지만,
나는 글로 먼저 살아
그다음의 현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걷기 힘든 자리에서도,
글로 먼저 살아
삶을 천천히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