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집의 첫 위로

말없이 곁에 머무는 존재에 대하여

by 이연

2026.01.21

이 글은 어제 올린 글을
지금의 마음으로 다시 고쳐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더 솔직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평화를 가져다준 건
나도 딸들도 아닌
강아지 루비였다.

예전에는
남편이 술을 마시면
꼭 루비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냐…”
하면서.

문제는
그 이야기를
루비만 듣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같은 말이 밤마다 반복되면
솔직히, 듣기 싫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루비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얘야, 오늘은 네가 좀 맡아줘.”

그러면 남편은
루비를 안고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두 내가 싫단다.
너도 싫냐?
그럼 나 재워주고
엄마랑 언니랑 놀아라.”

그리고는
루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해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들려오는 소리.

드르륵… 드르륵…
컼, 컼. 크억~

숨이 넘어가는
코골이에 놀라 깨우면
남편은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루비를 찾았다.

“루비는?”

그래서 우리는 또
다 같이 나서서
루비를 데려다줬다.

“얼른 들어가서
아빠 재워주고 와.”

신기하게도
루비는 그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가기 싫다는 티를 내면서도
뒤뚱뒤뚱 다시 따라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면서
“알았어, 재우고 올게…”
하는 얼굴로.

그걸
두세 번 반복해야
남편은 진짜 잠이 들었다.

루비는
여지없이 잠자는 숨결이 들리면
살금살금 방을 나와
우리에게로 온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애교를 부리면서.

“쓰담쓰담, 잘했어.
아빠 재워주고 왔어?”

우리는
칭찬 폭풍으로
그 작은 몸에
안심을 채워주곤 했다.

그때 나는 솔직히
루비에게
너무 미안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우리도 이렇게 힘들고
미워서 어느 날은
피하고 싶은데,
이 작은 애는
밤마다 그 모든 말을
혼자 받아내고 있으니.

왜 꼭 술로 하루를 끝내야 하는지,
왜 그 말들을
우리에게 말하지 못하고
루비에게만 하는지를
나는 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 안의 평화가
그 고요한 코골이 위에
겨우 매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란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술을 마시지 않기 시작했다.

다만,
루비가 밤마다
그의 품에 꼭 안겨
숨결을 맞추듯 자던 날들이
점점 길어졌고,

그 숨결이
어느 순간부터
술 냄새 대신
조용한 체온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나는 알고 있다.

밤은
아주 조용해졌다.

남편은 가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화가 나다가도
이 애만 보면
마음이 좀 내려앉아.”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밤을
이 작은 애의 체온으로
버텨왔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루비는 열다섯 살이 되었다.

백내장으로
눈도 귀도 많이 약해졌다.

요즘
남편이 루비를 돌보는 모습은
참 지극정성스럽다.

아침이면 안약을 넣어주고,
대소변을 치우고,

춥다며
아침 햇볕이 들어오는 시간을 맞춰
둘이 함께 산책을 나선다.

해가 골목 끝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있다.

“다리 아파?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해야
너랑 나랑 오래 버틸 수 있어.”

이불속에서
하소연하던 시간들처럼

둘은 늘 그렇게
동행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은
돌아와서
이불을 빨고,
식사와 간식까지 챙긴다.

어느 날 오후,

방 안으로 햇빛이

반쯤만 들어와 있었다.

루비는

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비틀거리기를 반복했다.

탈골된 다리가

다시 정상으로 움직이기까지는

몇 번의 넘어짐을

거쳐야 했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다

나름대로

탈골된 다리를

제자리에 넣듯

맞추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루비는

내가 걷는 속도에

자기 일상을

맞추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본능적인 반응을 보면서

나는
삶의 지혜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아픈 몸으로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예전엔
내 옆에 붙어 있던 루비가
요즘은
아빠 옆에 더 오래 머문다.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너도 이제
할머니보다
할아범이 더 좋은가 보다.”

“너도 이제 할머니지,
나도 할머니야.
그런데 너는 더 할아버지가 좋고,
나도 더 할아버지가 좋아.
둘이 똑같네.”

그러면
남편은
피식 웃으며
우리 루비한테 온다.

“타임머신 타고
아빠로 변신이다.”

하면서
루비를 안아 든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우리가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루비가
우리 집 동행의
첫 위로이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는 안다.

누군가를 고치는 일은
설득하는 것도,
바꾸려 드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저
말없이 곁에 머무는 일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혹시
당신의 집에도
그런 루비가 있는가.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조용히
당신의 삶을 살려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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