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은 그렇게, 작은 몸에서 시작됐다
2026.01.20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평화를 만든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였다.
예전에는
남편이 술을 마시면
꼭 강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냐…”
하면서.
문제는
그 이야기를
강아지만 듣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같은 말이 밤마다 반복되면
솔직히, 듣기 싫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강아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얘야, 오늘은 네가 좀 맡아줘.”
그러면 남편은
강아지를 안고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두 내가 싫단다.
너도 싫냐?
그럼 나 재워주고
엄마랑 언니랑 놀아라.”
그리고는
강아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해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들려오는 소리.
드르륵… 드르륵…
컼, 컼.
숨이 넘어가는
코 골 리에 놀라 깨우면
남편은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강아지를 찾았다.
“강아지는?”
그래서 우리는 또
다 같이 나서서
강아지를 데려다줬다.
“얼른 들어가서 아빠 재우고 와.”
신기하게도
강아지는 그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가기 싫다는 티를 내면서도
뒤뚱뒤뚱 다시 따라 들어갔다.
뒤돌아보며
“알았어, 재우고 올게…”
하는 얼굴로.
그걸
두세 번 반복해야
남편은 진짜 잠이 들었다.
강아지는
여지없이 잠자는 숨결이 들리면
살금살금 방을 나와
우리에게로 온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애교를 부리면서.
“쓰담쓰담, 잘했어.
아빠 재워주고 왔어?”
우리는
칭찬 폭풍으로
그 작은 몸에
안심을 채워주곤 했다.
그렇게
요란하게 살던 사람이
요즘은 술을 끊었고,
밤은 아주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강아지는 열다섯 살이 되었다.
백내장으로
눈도 귀도 많이 약해졌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그 강아지를 돌보는 모습은
참 지극정성스럽다.
아침이면 안약을 넣고,
대소변을 치우고,
산책을 시키고,
이불을 빨고,
식사와 간식까지 챙긴다.
예전엔
내 옆에 붙어 있던 강아지가
요즘은
아빠 옆에 더 오래 머문다.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너도 이제
할머니보다
할아범이 더 좋은가 보다.”
“너도 이제 할머니지,
나도 할머니야.
그런데 너는 더 할아버지가 좋고,
나도 할아버지가 더 좋아.
둘이 똑같네.”
그러면
옆에서 남편이
피식 웃는다.
그 웃음 하나로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더 가벼워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존재가
우리 집 동행의 첫 치료자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동행이란
함께 걷고,
먼저 아파주고
먼저 기다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의 첫 치료자는
말없이 그렇게
곁에 머물며
우리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