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보는 사람

이해하려고 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었던 날

by 이연

2026.01.29

카드 알림이
연달아 울리던 저녁이었다.

식탁 위에
명세서를 펼쳐두고
나는 숫자를 다시 맞추고 있었다.

금액 하나하나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빠져나간 횟수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말했다.

“이 정도는 써도 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생활비가
늘 빠듯하다는 것도 알고,
앞으로 조금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이해했다.

나는
계산기를 다시 눌렀다.

이번 달 고정비,
다음 달 예정된 지출,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차분하게 정렬됐다.

그 사이
남편은
자기 생각을 이어갔다.

“지금만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보지 마.”

그 말이
점점
설명이 아니라
주장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했다.
늘 그랬듯이.

이 사람의 불안도,
확신도,
자존심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하는 동안
현실은
아무도 대신 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명세서를 접었다.
종이가
얇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이건 꼭 필요한 지출이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괜히
돈 따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괜히
상대 기분 상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는 쪽에
항상 내가 서 있었고,
감당하는 쪽에도
늘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이건
지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야.”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고,
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남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괜히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졌다.

왜 안 되는지,
어디서부터 빠듯한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하지만
그만두었다.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리를
지우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때
남편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

그는
숫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끝까지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현실을 끝까지 보면
자기 자리가
너무 작아질 것 같았고,
지금의 자신이
부족해 보일까 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괜찮아”라는 말을
먼저 붙잡았을 것이다.

그 말이
버티는 방법이었을 테니까.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해가
항상 양보로 끝나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으로 분명히 알았다.

생활은
누군가의 확신 위에서
굴러가지 않는다.

숫자는
솔직했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해하기 전에
한 번 더 계산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 계산이
나를
차갑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자리를
지켜주는 선이 되어주었다.

이해는
사랑일 수 있지만,
현실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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