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이 습관이 된 사람들

말 못 하는 불안을 혼자 삼키는 순간들에 대하여

by 이연

2026.01.16

요즘 내가 제일 자주 보는 표정은
웃고 있는데 눈이 안 웃는 얼굴이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너무 쉽게,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

진짜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특히 가족 앞에서는
제일 약해지기 어렵다.

괜히 짐 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분위기 망칠까 봐,
괜히 더 걱정 끼칠까 봐
입을 다물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오늘도
괜찮은 척을 한 번 더 하고,
혼자 있는 밤에야
숨을 길게 내쉰다.

언니는 늘 말했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은 태연했는데,
나는 그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큰 병이면 어쩌지,
진행은 얼마나 됐을까,
병원비는 감당할 수 있을까,
간병은 누가 하지.

그 생각들이
순식간에 스쳐간다.

그래서 언니는
자기 혼자서
먼저 결론을 내렸다.

아닐 거야.
가벼운 증상이지.
그냥 노환일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밤이 되면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 불안이
전화기 너머로
다 들려왔다.

괜찮은 척은 배려 같지만,
사실은
외로움에 더 가깝다.

언니가 어느 날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남편한테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해.”

이미 서로 예민해져 있어서
한마디 꺼내는 자체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내가
괜히 더 슬퍼졌다.

그래서 언니는
혼자 병원 갈 결심을 했다.

남편은 직장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언니는 괜히
자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도 이미 무거웠다.

아들은 취준생이었다.
집 안에서는 늘
취업 이야기,
면접 이야기,
불합격 소식 이야기뿐이었다.

언니는 그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자기 몸 얘기를
더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딸들이었다면
조금은 다르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감정을 말하는 방식이
딸들과는 다르다고 한다..

괜히 아들한테까지
부담을 얹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는
더 조용해졌다.

나는 그 말이
제일 마음이 아팠다.

몸이 아픈 사람보다,
더 먼저 계산부터 하는 사람이
더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픈 와중에도
“내가 참으면 되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도움을 못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안 받는 쪽을 선택한다.

그게 더 편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날 이후로
나는 언니랑
자주 통화하게 됐다.

별 얘기 안 해도 됐고,
해결책을 찾지 않아도 됐다.

그냥
“오늘은 어땠어?”
이 한 마디면
언니는 한참을 말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은
해결책이 필요할 때보다,
그냥 자기 얘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더 많다는 걸.

나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게
희생만을 강조하며
지낸 삶의 흔적이라는 걸.

언니 이야기이자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멈췄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다.

혼자 버티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질 때
그냥 옆에 있어주는
정서 동행을 준비 중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숨 쉴 틈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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