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고 들어온 사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by 이연

며칠 동안 수익 구조에만 신경 쓰다 보니,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밀리는구나 싶었다. 생각은 늘 바쁘게 돌아가는데, 정작 마음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며칠 전 외국인 여자 손님이 매장에 들어왔다. 서른 중반쯤으로 보였고, 키는 작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베트남 사람 같았다. 그녀는 양말을 찾고 있었다.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 듯했고, 아마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바람에 머리는 엉클어져 있었고, 목이 짧은 회색 양말은 뒤꿈치가 닳아 살짝 헤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발목의 맨살이 드러나 더 추워 보였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는데도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고 얇은 양말만 신고 있었다.

왜 신발을 안 신었냐고 물어봐도,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어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서로 다른 생각 속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외국인 노동자가 학대를 당하다 월급도 못 받고 도망쳤다는 뉴스 한 장면이 스쳤다. 너무 빠르게, 너무 쉽게 짐작부터 해버린 나 자신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양말을 내어 보이자 그녀는 두껍고 큰 것을 말 대신 몸으로 말했다. 남자 양말을 보여 주자 직접 신어 보더니 그걸로 달라고 했다.
“얼마예요?”
“3000원이요.”
돈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그냥 한 켤레 가져가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친구 한 명이 뒤따라 들어왔는데, 그 친구 역시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왜 이렇게 추운데 신발을 안 신었냐고, 신발이 없냐고 발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그는 “아뇨, 아뇨” 하며 급히 나갔다. 그제야 알았다. 매장 입구에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왔던 거였다.

순간 도망쳐 나온 건가, 112에 신고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꽤 자주 지나는 길목이다. 다양한 민족들이 드나든다. 어느 나라였는지는 잊었지만, 가끔 한국에 와서 살게 된 친구들과 1년에 한 번씩 꼭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을 위해 친구들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고, 제일 예쁜 옷을 입고 나가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고향 이야기, 지금 사는 이야기, 서로의 시간을 꺼내 놓으면서.

어떤 친구는 옷을 좋아해서 네 명이 만나면 똑같이 입고 싶은 옷을 사 간다며 같은 옷을 고른다고 했다. 그날이 있기에 1년을 기다리며 모든 걸 잊고, 참아낼 수 있다는 말에 엄마가 문득 떠올랐다.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날 때, 엄마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버텼던 시간들이 다시 살아났다.

“얼마나 됐어요?”
“8년 됐어요.”

이제는 우리말도 능숙하게 잘했다.

“가족들은 어때요?”
“엄마가 너무 잘해 주세요. 아들도 학교 다녀요.”

오늘은 엄마가 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도 주셨다고 했다.

“그래, 너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생각했다. 저런 따뜻한 엄마가 생겨서.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뭐예요?”
“통닭이요.”
“그럼 저녁에 통닭 한 마리 사 가지고 가세요.”
“네, 그럴게요.”

너무 착한 며느리라고 자랑을 많이 하시겠다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 잘 못해요.”
잘하려고 애쓰고 있는데도.

그 말에 마음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부대끼며
하나가 되어 가는 시간의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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