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남은 걸음

아침 1시간, 첫눈이 데려간 기억 하나

by 이연


아침의 1시간은
하루가 말을 걸어오기 전,
내가 먼저 나에게 닿는 시간이다.
이 글은 그 시간에 적었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다.

뒤를 돌아보니
비틀비틀 찍힌
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 반듯이 걸어야지.’

평소에도 종종 신경 쓰이던
약간의 팔자걸음.
눈 위에서는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반듯이 걸어보려 했지만
어느새 골목 끝자락이다.

잠시, 걸음이 멈췄다.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려

들판은 통째로 하얘졌다.
눈부시도록 하얀 세상에
오랜만에 온몸이 호강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시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내쉰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는
눈 밟는 소리.
그 길은 마치
넓은 바다 앞에 선 것처럼
나를 멈춰 세운다.

잠시 후,
오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시원한 숨 하나를
선물처럼 남긴다.

부지런히 트렁크를 열어
빗자루를 꺼낸다.
차 위에 내려앉은 눈을 쓸어내리다
문득 생각이 난다.

아, 시동을 먼저 걸어야지.
엔진 힘을 덜어준다 했지.

엔진을 켜둔 채 다시 눈을 쓴다.
눈은 제법 많이 쌓여 있다.
아마도 7센티미터쯤.

오랜만에 오는 눈에
기분은 괜히 들떴다.
기온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차 위의 눈을 다 쓸고
운전석에 앉자
전화벨이 울린다.

“출근 어떻게 하셨어요?
저는 고속도로로 왔어요.
눈이 너무 많이 왔어요.”

“조심히 오세요.”

함께 근무하는 동생이
눈길을 걱정해 준다.
고맙다.

눈이 오면,
나는 늘 좋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을까.

수업시간에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나눠
눈싸움을 하던 날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눈도 참 자주, 많이 왔던 것 같다.

정신없이 눈싸움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여자아이들은 이미 다 도망가고
나 혼자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눈을 계속 맞으면서도
정신줄 놓고
그냥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그제야 상황을 인지했다.

그 이야기는 한동안
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자랑이었는지 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여자애가 남자애들 상대로… 어쩌고.”

당시엔 깡다구라는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눈이 오면,
나는 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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