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용기가 부러웠던 이유

책으로 처음 만난 세계

by 이연


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알았다.
내 삶에 오래도록 물음표를 남겨두었던
노라를.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영어로 된 조그만 문고판 한 권,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친구 언니에게 빌려
사전을 옆에 두고
한 문장, 한 문장 더듬으며 읽었다.

줄거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질문 하나만은 또렷이 남았다.

왜 저 여자는 집을 나갔을까?

엄마였고,
아내였고,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모든 것을 두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이유 없이
그 여자가 부러웠다.

왜였을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 속의 주인공을
남의 이야기로 읽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육아 휴직으로 합반을 하게 되었고
그 교실은 도서관을 겸한 교실이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
교실 뒤편에 빼곡히 꽂혀 있던 책들.

수업이 조금만 일찍 끝나면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재미있어서,
그저 너무 재미있어서.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책처럼
그날 다 읽어버리곤 했다.

책은
공부가 아니라
세계였다.

그래서였을까.
책 속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부터
바로 내가 되었다.

심훈의 『상록수』,
이광수의 『흙』.
내용은 희미해졌지만
농촌을 살리겠다고
사람을 깨우겠다고
자기 삶을 내어놓던 주인공의 모습만은
이상하리만큼 깊게 남아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
어려운 문제가 눈앞에 닥치면
온 힘을 주는 순간
하늘을 나는 꿈.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려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넘어서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이었다.

그래서 『인형의 집』의 노라도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부러움으로 남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노라는
행복해서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에
문을 닫고 나섰다는 것을.

아내로서의 역할은 있었고,
엄마로서의 책임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나’는 없었다.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시작하러 간 것이었다.

나는 노라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을 나서지는 않았다.
대신
삶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아주 늦게 배웠다.

가정 안에서,
관계 안에서,
무너지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기다리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나를 회복해 왔다.

그래서 이제
노라의 용기는
부러움이 아니라
이해가 되었고,
그때의 물음표는
답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내 삶으로 뒤늦게 깨닫는
늦깎이 지각생이 되었다.

하지만
늦게 도착했을 뿐,
틀린 답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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