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오늘도 내 자리로 찾아온다 — 프롤로그

아침 뉴스가 불러낸 오래된 기억, 그리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by 이연

한옥마을을 다시 쓰기 시작한 요즘,
나는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시간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어 살 수 있는 곳,
서로를 밀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마을을 마음속에 품어 왔다.

2025년 12월 3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비상·계엄 1년’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한마디가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을 흔들었다.
누군가는 스쳐 들을 뉴스였겠지만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그 시절의 공기와 어둠이 다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던 중 문득 오래된 기억이 선명해졌다.
서울에서 살아가던 젊은 시절,
1980년 5월 18일.
예고 없이 통신이 끊기고,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던 날들.
그때의 긴장과 막막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 그 기억을
두려움으로 붙잡지도,
분노로 꺼내지도 않는다.
그 시간은 내 삶을 흔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조용히 일러준 스승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완전히 덤덤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두렵고,
가만히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때도 있다.

가끔은 갑자기 멍해져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릴 때가 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만 조용히 남아 있는 순간.
그 시간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글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숨겨 두었던 감정들이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고,
그 감정들을 바라보는 나 또한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나에게 닿는 길을 걸어온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내 자리로 찾아온다.

— 내일은, 이 길의 다음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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