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에 있습니다

조금 덜 가져도 되는 하루에 대하여

by 이연

2026.02.05

남자 한 분이 엄마 옷을 사 가지고 가셨다. 가끔 들르시는 분이다. 며칠 후 다시 오셔서 사이즈 교환을 원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여든이 넘도록 5년 전까지 시장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셨다고. 어릴 때부터 늘 들었던 교훈이 있단다. 시장에 가서 가격 깎지 말 것. 좋은 것만 고르지 말 것. 아낄 수 있는 건 다른 데서 아끼라고. 지금도 어머니는 시장에 가시면 구석진 노점에서 할머니들이 보따리로 조금씩 내놓은 마른 채소를 사 오신단다. 손질해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것들. 생각을 삶에 그대로 옮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문득 한 일본 작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글을 쓰며 생계를 위해 부식 가게를 함께 운영하던 시절, 가게가 번창할수록 글 쓸 시간은 사라지고 일상은 너무 바빠졌다. 어느 날, 앞집에 붙은 ‘임대함’이라는 푯말을 보고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 작가는 결심했다. 오전 장사만 하기로. 그날의 생계만 해결하고 문을 닫았다. “물건이 없어요. 앞집에 있습니다.” 그 푯말을 걸어 두고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글에 바쳤다. 그렇게 쓴 글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매출이라는 숫자를 좇다 보면 생계라는 말 뒤에 왜 일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자꾸 뒤로 밀린다. 손보다 먼저 눈이 더 좋은 채소를 고르고, 곁에 있던 할머니는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오늘은 정리된 매장 한가운데서 잠시 손을 멈춘다. 옷 사이를 지나간 얼굴들 중에 놓치고 온 시선은 없었는지, 보지 않으려 외면한 사람은 없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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