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생존을 넘어,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2025-12-27 13:50 따뜻한 집 거실에서, 밖은 영하 7도..)
집 한구석, 작은 화분 몇 개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식물을 기른다는 건 꽤나 수고로운 일입니다. 정성을 다해 물을 주어도 어떤 잎은 시들고, 어떤 잎은 기운 없이 처지곤 하죠. 특히 요즘처럼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화분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 작은 화분들과 닮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성실히 하루를 채우고 차곡차곡 저축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은 마치 볕이 잘 들지 않는 베란다 같습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는 말이 위로가 될 만큼 세상은 척박해졌고,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은 어느새 시든 잎사귀처럼 힘을 잃어갑니다. 노력의 보상이 불투명한 시대, 우리는 자꾸만 "굳이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됩니다.
욕망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대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내일을 꿈꿉니다. 왜일까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보면, 거기엔 타인과의 비교나 화려한 과시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자기 확장'의 욕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고 했지만, 그 모방의 껍질을 완전히 걷어내면 비로소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성장의 본능’과 마주하게 됩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식물들이 잎을 틔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생명력을 확장하고 싶다는 내면의 본능 때문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꽃피우고 싶은 '성장의 욕구'가 우리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가치는 세상이 매긴 '가격표'나 '순위'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는다."
코스피, S&P500 지수, 부동산 가격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아도 내가 오늘 정성껏 돌본 내 마음의 근육과 새롭게 깨달은 지혜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자산입니다. 타인이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트랙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결국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외부의 성취로 나를 포장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완성하고 싶다’는 가장 순수한 자기애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위축시켜도 내면을 향한 성장의 갈망만큼은 나를 다시 숨 쉬게 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됩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뎌낸 나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품은 욕망은 타인을 이기려는 독함인가요?
아니면 나 스스로를 조금 더 피어나게 하고 싶은 순수한 갈망인가요?
세상이 정한 속도에 맞추지 못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식물마다 꽃을 피우는 계절이 다르듯이 나만의 성장이 무르익는 타이밍도 분명 따로 있을 테니까요. 오늘 내가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이 훗날 나의 삶에서 가장 향기로운 스테디셀러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번듯한 집을 갖는 것보다 근사한 일은 '나'라는 존재가 머물 자리를 단단하게 가꾸는 일입니다.
불안한 미래 속에서도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작은 성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