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주체성에 대하여
(2026-01-03 20:03 김천구미역에서)
퇴근길, 갑자기 쏟아진 비에 신발이 흠뻑 젖어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기상청의 오보를 탓하고, 우산을 챙기라고 말해주지 않은 가족을 원망하며 집으로 돌아왔죠. 축축한 신발을 벗으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비를 멈출 수는 없었지만, 가방 안에 작은 우산 하나를 넣어둘지 말지 결정한 것은 결국 '나'였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예상치 못한 불운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내 손을 떠난 '외부의 요인'에서 이유를 찾으려 애씁니다. 그것이 당장의 마음은 가장 편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팀원의 무능함을 탓하고, 관계가 틀어졌을 때 상대방의 성격을 비난하곤 합니다. 심지어 내가 처한 환경이나 시대를 탓하며 지금의 무력감을 정당화하기도 하죠. 하지만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비평이 길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점점 더 약해집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열쇠 또한 '남'이 쥐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트라우마나 주변 환경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 환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주체라고 강조합니다. 남 탓은 문제의 원인을 밖으로 던져버림으로써 내 잘못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지만, 동시에 내 삶의 '의지'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가장 게으른 선택이기도 합니다. 비난은 쉽고 변화는 어렵기에 우리는 변화라는 고통 대신 비난이라는 손쉬운 비평을 택하곤 하는 것이죠.
남 탓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연약한 자아'와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결과가 실패했을 때의 무력감을 견디기 힘들어 우리는 타인이라는 방패 뒤로 숨어버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상처받을 용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선호하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게으른 비평가에서 내 삶의 주체성을 바로 잡는 지점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괴롭혔던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있었나요?
그를 향한 비난을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 내가 놓쳤던 선택의 순간을 되짚어 보세요.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는 예리한 감각보다 더 소중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내 삶을 조금씩 이나마 긍정적으로 행동하려는 나 자신에 대한 다정한 책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