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가 두렵다면 '오늘의 감각'을 믿을 것.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자세에 대하여

by Juno

(2025-12-20 22:20 조치원역 근방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연기 사이로 달큼한 군고구마 냄새가 스쳐 지나갑니다. 어디선가 시골 특유의 시큼하고 쿰쿰한 풀 내음이 코끝을 알싸하게 찌르기도 합니다. 익숙한 향기들은 나를 자연스럽게 20년 전의 기억으로 데려갑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과연 어떤 꿈을 꾸었더라?'


정의감에 불타는 판사를 꿈꾸기도 했고, 우주의 신비를 밝히겠다며 우주 비행사를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늠름한 군인이 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지요. 그 시절의 호기심과 순수함은 다가올 미래를 희망이라는 색깔로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지 되돌아보았습니다. 희망 대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도대체 무엇이 그리 크게 변해버린 걸까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현실의 무게와 책임감이 되어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달라진 건 딱 하나였습니다.어릴 적의 저는 '오늘'을 살았고, 지금의 저는 오지 않은 '3년 뒤'를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군고구마 냄새가 좋으면 그저 킁킁거리며 행복해하던 아이는 이제 군고구마 냄새를 맡으면서도 '내일 출근은 어떡하지?', '3년 뒤에 전세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지?'를 계산하느라 바쁩니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리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불안은 항상 '실체 없는 미래'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90%는 아직 일어나지도,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입니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삶은 수많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을 불행을 미리 가불해 와서, 오늘 느낄 수 있는 군고구마의 달콤한 향기를 지워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미래에 압도당해 오늘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주객전도인 듯합니다.


그래서 두려워질 때마다 '오늘의 감각'을 믿기로 했습니다. 복잡한 머릿속에서 과부하를 일으킬 때면,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겨울바람의 촉감, 입안에 퍼지는 따뜻한 온기, 눈앞에 보이는 기차역의 풍경에 집중합니다.


미래는 머릿속에만 존재하지만 감각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니까요. 불안이 안개처럼 시야를 가릴 땐, 크게 숨을 들이마셔 봅니다. 쿰쿰한 풀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며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너는 지금 여기 살아있다.'


오늘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3년 뒤의 나도 분명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걱정 대신, 이 겨울의 냄새를 온전히 맡겠습니다. 3년 뒤의 두려움보다, 오늘의 고구마 냄새가 더 중요하니까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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