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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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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18. 2023

Episode 26

충형과 박하 03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포르투 ‘도루’강 앞에 대충 앉아, 여행 초반쯤에 만났던 충형과 레온에서 만난 박하와 함께 세병째 포트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각각이 다른 종류의 포트와인을 마셔보니, ’타우니‘, ‘퀴라도’도 물론 맛있었으나 포트와인 종류 중 하나인 ‘루비’가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당분이 남아있는 발효 중간단계에 브랜디(와인을 증류한 주정)를 첨가하여 발효를 중단시켜 만들어지는 와인인데, 과정동안에 와인의 도수와 당도가 높고 오래 보관이 가능한 와인이다. 포트와인의 역사적 배경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까지 흘러간다.

 포트와인을 처음 마셔봤던건 스페인을 다리건너 포르투갈에 도착했었던 날 저녁이었다. 그날엔 이네스와 박하가 함께였다. 발렌카란 포르투갈 국경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알아봐둔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체크인부터 하고 난뒤 숙소 근처에 있던 마트에 저녁장을 보러갔다. 꽤나 큰 마트를 한 바퀴 둘러보며 오늘 저녁으로 먹을것과 다음날 걸으면서 먹을 것들을 하나 둘 카트에 주워담았다. 어느정도 고르고난뒤 마주한 주류코너에서 엄청난 양의 와인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다양한 와인을 보던 중에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PORTO CRUZ' 라고 적혀져있는 와인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인 병의 모양은 일반적인 다른 와인들과는 달랐는데, 길이는 다른것들과는 다르게 꽤나 짧았고 둘레는 샴페인병 정도는 되보였다. 혼자 구석에 쪼그려 앉아 포트와인 하나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걸 봤는지 박하가 내게 와 물었다.


“순호씨. 그거 마셔보셨어요?”

“이거요? 아니요. 그냥 병이 예뻐서 보고있었어요”

“아, 그거 포트와인이라는건데 엄청 맛있어요”

"그래요? 술이 맛있어요?"


 박하는 신이난 얼굴로 내게 포트와인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가 술을 좋아하기도하고, 단순히 마시기만 하기보다 마시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며 즐기다보니, 박하가 들려주는 포트와인에 대한 이야기도 역시나 흥미로웠다. 박하에게 포트와인에 대해 설명을 듣고나서 난 여러 브랜드의 포트와인 중에 처음부터 내 눈에 띄었던 'PORTO CRUZ' 와인 하나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포트와인 한 모금 마셨을때, 정말이지 술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와인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었다. 난 포트와인을 처음 맛봤던 이 날 이후로 어딜가든 포트와인을 종류별로 찾아 마셨다.

박하를 처음 만났을때는 조나단과 클라리스를 레온에서 다시 만났던 날이었다. 두 친구와 숙소 앞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실컷 마시고나서 숙소로 돌아와 누워있을때였다. 누군가 방으로 들어와 내 앞자리 침대에  배낭을 던지고나서 한 숨을 크게 푹 쉬는게 들렸다. 바로 앞에서 들리는 유난히 큰 한숨소리에 상체를 세워 앞쪽을 바라보니,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하나가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다. 

 그는 연예인 노홍철과 비슷할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했었는데, 며칠은 관리를 안했는지 수염들이 저마다 삐죽삐죽 튀어 나와있었다. 수염 만큼이나 그의 머리도 굉징히 부스스한 상태였다. 만약 한국에서 그를 봤다면,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칠고 지저분한 이미지였다. 내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은 냉랭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냈다.


“어? 혹시 한국분이세요?”

"어.. 네, 맞아요“

”오! 반가워요! 전 박하라고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난 그때 그의 이름이 박하라는걸 듣고나서 이름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의 본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있었을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난 그와 인사을 나누고나서야 왜 그가 그렇게나 깊은 한 숨을 쉬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곳 레온에 오는길 이틀 전 부터 발목쪽에 염증이 생겨 도무지 걸을 수 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씩 걸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얘기를 듣고나서 그의 발목을 보니 그의 왼쪽 발목은 상당히 많이 부어있었다. 발목만 부어있는게 아니라 왼쪽 발 전체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 레온에서 다리가 괜찮아 질때까지 몇일 쉬다가 괜찮아지고 나서 다시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겪는 고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알지 못했던 나는 한참을 지나 염증이 생겨 아프고나서야 그가 겪었을 고통의 크기가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얘기하던 도중 한가지 더 재밌는걸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이미 나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상태였다. 알고보니 순례길 초반에 있었던 마을인 푸엔테라이나에서 만났던 충형과 박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안그래도 충형이 나와 몇일 길을 함께 걸으며 나눴던 이야기거리를들과 나에 대해서 박하에게 얘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길 위에서 얘기만 듣던 나를 한번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했다.

 이때만해도 코로나로 인해 막혀있던 유럽행 항공편이 풀린 직후라 그런지 평소에는 그렇게나 많다던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이 시기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상황이었다. 그래서 박하가 나를 더 쉽게 알아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박하와 나는 우리 사이에 충형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덕분에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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